[한경에세이] 인기 투표‥황성혁 <황화상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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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혁
아프리카 북단에 위치한 어느 나라를 자주 방문했었다.
그 나라의 공항 로비에 들어서면, 정면에 붉은 망토를 뒤로 휘날리며 뒷발로 일어선 백마에 올라 탄 나폴레옹을 흉내 낸 그 나라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석유 생산이 증가하면서 국제적인 발언권을 갖기 시작한 대통령은 기존 관료들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모든 국영기업의 경영진을 종업원의 인기 투표로 선출토록 법을 만들었었다.
언젠가 그 나라 국영 해운회사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미리 회장과 면담 약속을 하고 갔었으나 회장실에 도착해 보니 말끔하게 양복을 맞춰 입은 삼십대 초반의 비서 같은 젊은 사람이 나와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그의 어깨 너머만 쳐다보며 회장이 언제 나오나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자 그가 넌지시 명함을 내밀었다.
거기엔 '국영해운 회장'이라는 타이틀이 찍혀 있었다.
그는 갑판원이었는데 종업원들에 의해 선출된 뒤 회장직을 수행한 지 벌써 몇 달이 지났다고 했다.
말은 나누고 있었으나 전혀 대화가 되지 않았다.
그는 새 배를 짓고 그 배를 운영하는 계획을 신나게 설명했으나, 당일 치기로 시험 공부를 하고 나온 수험생 같아서, 실제로 배를 짓는 구체적인 절차나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여건에 대해서는 경험과 지식이 없었다.
전 회장은 고문으로 강등되어 새 회장의 옆방으로 밀려 나 있었다.
중동 지역에서 석유 업계와 해운 업계의 여러 고위직을 지냈고 높은 명망을 지니고 있던 그는 내가 들어서자 큰 소리로 말했다.
"바다 구경 못했지? 바다 구경이나 합시다." 그러고는 그가 직접 차를 몰아서 지향 없이 쏘다니며 차 속에서 얘기를 나눴다.
도청을 두려워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된 거요" 나는 물었다.
"보시는 바와 같이 임직원들이 그들 또래로 구성이 되어 어떻게 손써 볼 도리가 없어요.
떠들기는 하지만 방향도 없고 방법도 없어요.
최선을 다해 도우려고는 하지만 글쎄 얼마나 도움이 될지."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나라를 떠났고, 아랍권에서 가장 튼튼한 내실을 자랑하던 그 회사는 그럭저럭 실체가 없어지고 말았다.
우리 사회에서도 인기 투표가 도입되었다.
대학교의 총장도 그렇게 뽑고 방송사 대표도 그렇게 뽑는다.
그 범위가 점점 확장될 추세다.
명망이나 경험과 실력보다 회사 동료들에게 인기높은 사람이 치열한 선거전을 통해 뽑힌다.
자칫 그 조직은 고객의 편의나 조직의 설립 목적인 사회적 공익을 추구하기보다, 조직원들의 아집을 대변하기 위해 존재하는 집단으로 오해받을 소지가 다분하다.
조직의 내실을 다지고 먼 장래의 목표를 지향하기보다, 목소리 큰 조직 속의 투표자들 기호에 영합하는 그들만을 위한 조직이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다.
타기해 마지 않는 나눠먹기식의 낙하산 인사보다 낫다고 확언할 수 있을까.
선출권을 그 조직의 설립 목적에 부합하는 제 삼자들에게 맡기는 겸양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