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화두(話頭)‥이석영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이석영 2005년도 꼭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다. 광복 60주년을 맞아 선진 도약 변화 같은 어휘가 유행처럼 쓰인 게 엊그제인데,벌써 한 해가 지려 하고 있다. 이맘때 쯤이면 주요 언론은 앞다퉈 그해 국내외에서 크게 주목을 끌었던 사건을 중심으로 '10대 뉴스'를 뽑곤 하는데,내용은 대개 거기서 거기다. 국내만 보더라도 최근 논란의 한 가운데에 있는 줄기세포 파문을 비롯해 8·31 부동산 대책,청계천 복원,호남 폭설 등을 들 수 있겠고 국제적으로는 남아시아 쓰나미 대참사,미국 카트리나 대재앙,런던 연쇄 폭탄테러 같은 뉴스가 꼽힐 만하다. 그런데 최근 지면을 장식하고 있는 이런저런 '올해의 뉴스' 가운데 '상화하택(上火下澤)'이란 말이 눈길을 끈다. 교수단체가 발간하는 신문이 200명의 대학교수들을 대상으로 올해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상황을 한마디로 표현할 사자성어를 조사한 결과 1위로 선정된 이 말은 '위는 불,아래는 못'처럼 우리 사회가 서로 이반했음을 의미한다. 국정을 방치한 채 되풀이된 정쟁,행정 복합도시 건설을 둘러싼 비생산적인 논쟁과 지역 간 반목,해방 이후 이어져온 이념갈등 등의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상생하지 못한 채 분열만 거듭했다는 것이다. 교수들의 이런 평가가 아니더라도 올 한 해 우리 사회는 어느 해 못지 않은 혼란 속에서 시간을 보낸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하다. 과연 이렇게 소모적인 모습을 반복하며 허송세월을 계속해도 괜찮은가 하는 걱정을 지울 수 없다. 화합과 단결로 중무장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남의 탓만 하면서 분란을 일삼는데,과연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설 수나 있겠는가 하는 자조감마저 든다. 중국 고전인 '전후책' 제책편에 보면,한자로라는 발빠른 개가 동곽준이란 민첩한 토끼를 잡기 위해 수십 리의 산기슭과 가파른 산꼭대기를 오르락내리락하다가 결국 둘 다 지쳐 쓰러지자 이를 발견한 농부만 횡재했다는 '전부지공(田父之功)'의 고사가 나온다. 선진국은 달아나려고 안간힘을 쓰는 상황에서 견토지쟁(犬兎之爭)으로 날을 새우다가는 중국 인도 같은 후발개도국에 추격당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처지에 꼭 맞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필자는 우리 사회가 타인과 사이좋게 지내되 의를 굽혀 좇지 않는 군자 같은 '화이부동(和而不同)'의 경지에 금세 오를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하지만 맹목적으로 한쪽 편만 들어 화합하지 못 하는 '동이불화(同而不和)'의 행태가 더 이상 반복되어선 안 된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우리 사회가 서로 뜻을 달리하더라도 최소한의 화합만은 이룰 줄 아는 '부동이화(不同而和)'를 2006년의 공통 화두(話頭)로 삼자고 제안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