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잘못된 '선택' 과도한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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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悳煥
섀튼의 갑작스러운 결별 선언으로 촉발됐던 황우석 박사 논란이 더욱 추한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
전 세계를 상대로 했던 황 박사의 논문 조작은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했던 어떤 비리보다 심각하고 치명적이다.
우리가 과연 체세포 복제를 통한 배아 줄기세포 배양의 원천 기술을 가지고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엉터리로 조작된 논문을 발표한 사실은 '인위적 실수'라는 알쏭달쏭한 변명과 낯뜨거운 책임 떠넘기기로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전문적인 자료를 근거로 진실을 밝혀낸 젊은 과학자들의 노력이 그나마 작은 위안이었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사고는 예고된 것이었다.
우리 과학기술계를 휩쓸고 있는 '선택과 집중'과 '스타 만들기'가 바로 그 원인이다.
사실 정부에 의해 선택돼 집중 지원을 받는 스타 과학자의 반열에 올라서기 위해 작은 성과를 거창하게 부풀리는 아슬아슬한 일들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물론 정말 열심히 노력해서 세계적인 성과를 거둔 과학자들도 많았지만, 사고는 언제나 몰지각한 일부가 일으키게 마련이다.
선택과 집중은 한정된 재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법 중의 하나다.
모두가 공평하게 나누어 다수의 평범한 성과를 얻는 것으로는 치열한 경쟁을 이겨낼 수 없다.
아쉽더라도 다수의 양보로 조성된 재원을 집중적으로 투자해 세계가 주목하는 획기적인 성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우리 모두가 이기는 길이라는 것이다.
논리적으로는 그럴 듯하다.
우리가 정말 그런 정책으로 놀라운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어려운 우리의 '재벌'이 바로 그런 정책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선택과 집중이 성공하려면 정말 중요한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간과됐다.
'현명한' 선택과 '적절한' 집중이 보장돼야 한다.
재벌이 한강의 기적으로 세계를 놀라게 만든 것은 사실이지만,그런 재벌이 우리 모두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외환 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던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황 박사의 추락도 정확하게 잘못된 선택과 과도한 집중 탓이었다.
이제 우리는 무명(無名)의 황 박사를 스타 과학자로 만들어 준 영롱이의 진실마저 의심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영롱이에 대한 과학적 논문도 없고, 진실을 밝혀줄 기록은 몇 번의 이사 과정에서 모두 '잃어버렸다'고 한다.
오로지 국민을 열광하게 만든 언론 보도만 남아있을 뿐이다.
세계적인 연구 성과를 어쩌면 그렇게도 허술하게 관리할 수가 있었는지 믿을 수가 없다.
황 박사의 놀라운 말솜씨와 능란한 정치력에 눈이 멀어버린 언론의 선정적 보도만을 근거로 공식적인 절차를 무시한 몇 사람의 자의적인 선택이 얼마나 부실했는지를 너무나도 분명하게 보여주는 일이다.
황 박사에게 쏟아진 집중의 규모는 아무리 양보해도 지나쳤다.
도무지 황 박사에게 얼마가 지원됐고,그런 지원이 얼마나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사용됐는지를 알 수가 없다.
분명한 것은 우리 과학기술계에 정착돼 있던 모든 절차가 황 박사에게는 완전히 무시됐다는 것이다.
도대체 황 박사가 실제로 필요한 지원의 규모도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집중할 수 있는 정부 예산은 모두 황 박사에게 줘버린 모양이다.
그런데도 황 박사는 강남의 전셋집에서 살고, 핵심 기술을 개발한 연구원은 한 달에 고작 40만원을 받았으며, 국제 특허를 신청할 비용도 없었다고 한다.
외환 위기를 불러왔던 악덕 재벌의 주장과 어쩌면 그리도 닮을 수가 있는지 놀라울 뿐이다.
잘못된 선택과 과도한 집중은 기업가만이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는 과학자의 윤리 의식도 마비시켜 버리는 모양이다.
진정한 스타 과학자는 결코 억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좀 느리게 가더라도 차분하게 기다리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한 자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