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보도블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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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교수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을 지낸 음악평론가 이강숙씨는 언젠가 '잊을 수 없는 사람'으로 초등학교 때 선생님을 꼽았다.
사연인즉,그 선생님은 '반에서 노래를 제일 잘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물어 들어본 다음 "글쎄,더 잘하는 사람은 없니" 하시더니 몇 사람 더 시켜보셨다는 얘기였다.
덕분에 자신의 노래 실력이 드러나 중고등학교 시절 국내 성악콩쿠르에 도전,입상함으로써 음악을 전공하기에 이르렀다는 고백이었다.
"뭘 그런 걸 갖고" 할 수도 있지만 기존의 틀이나 관행,이미지에 의문을 품고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번거로운데다 결과가 더 나으리라는 보장도 없는 까닭이다.
문제가 있고,따라서 바꾸거나 고치는 게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일이 오랫동안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되풀이되는 것도 틀과 관행의 '보이지 않는 힘'에 기인한다.
하던대로 하면 최소한 책임은 면할 수 있는데다 기득권자들의 반발을 살 일도 없다는 사실이 잘못된 줄 뻔히 아는 일들의 개선을 가로막는 것이다.
연말이면 온 동네방네에서 이뤄지는 보도블록 교체 역시 그런 일의 하나다.
보도블록만 파내랴. 멀쩡한 도로의 경계석이나 가로수 덮개도 걷어내고 새로 설치한다.
물론 이유는 있다.
시민의 안전과 취로사업 등.그러나 이들 연말 공사가 대부분 '남은 예산 처리를 위한 연례행사'라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알 지경이다.
마침내 기획예산처가 보도블록 교체와 도로공사를 둘러싼 예산낭비 사례를 뿌리뽑겠다고 나섰다.
내년 1분기에 실태조사를 실시,보도블록 교체 등과 관련된 객관적인 기준을 만들고 연말 낭비성 공사 억제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오래 해오던 일을 중단하거나 줄이는 건 간단하지 않을지 모른다.
개선의 당위성이 아무리 명백해도 변화에 따른 칭찬의 소리는 멀리 있고,이해당자자들의 반발은 바로 옆에 있을 테니까.
그렇더라도 이제 바꿀 건 바꾸면 좋겠다.
겨울 공사의 부실 가능성은 그렇다 치고 어차피 다시 할 걸 꼼꼼하게 할 거라고 기대하기도 어렵지 않은가.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