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IMF , 설 자리가 없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외환위기 때 막강한 위세를 떨쳤던 국제통화기금(IMF)이 새로 돈을 빌려줄 나라가 없어 사업 모델을 바꿔야할지도 모르는 위기에 내몰렸다. 전 세계적으로 금융시장이 안정돼 있는 데다 구제금융을 받고 있는 나라들마저 잇따라 자금 상환에 나서면서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8일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최근 IMF 차관을 조기상환하기로 결정하면서 오랫동안 구제금융기관으로 존재해온 IMF의 역할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2005회계연도(2004년 5월~2005년 4월) IMF의 신규 대여자금은 25억달러로 1970년대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IMF의 대여금 가운데 미상환액도 작년 4월 900억달러에서 올해 11월 말 현재 660억달러로 감소했다. 이 중 브라질(155억달러),터키(136억달러),아르헨티나(100억달러),인도네시아(80억달러) 등 4개국의 비중이 71.4%에 달한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마저 자금을 상환하면 IMF의 입지가 더 좁아질 것이란 얘기다. 아시아는 이미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외환보유액 확대에 주력,IMF 구제금융과는 거리가 먼 상태다. 실제 외환위기 때 349억달러의 구제금융을 지원받은 한국은 2000년 말 'IMF 체제'를 졸업했고 현재 외환보유액이 2000억달러를 넘는다. 신흥시장 국가들의 '탈 IMF'는 IMF의 수입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IMF는 금융위기를 겪는 나라에 자금을 빌려주고 그 대가로 이자를 받아 수입을 충당하기 때문이다. IMF가 정상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운영자금으로 한 해 10억달러가 필요하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자금은 68억달러. 새로 돈을 빌려줘 이자를 거둬들이지 못하면 5~7년 안에 운영자금도 바닥날 수 있다. 케네스 로고프 전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하버드대 교수)는 "IMF가 향후 5~7년간은 버틸 수 있겠지만 국제 금융위기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을 경우 심각한 재정난에 봉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IMF도 대책 마련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FT는 IMF가 선택할 수 있는 방안으로 △장기국채 투자 △보유 중인 금(金)에 대한 자산 재평가 △일부 서비스 유료화 △미국 등 주요 출자국에 대한 이자 지급 축소 등을 꼽았다. 더 큰 문제는 IMF의 위상 추락이다. 전문가들은 2차대전 후 국제 지급결제와 국제 경제의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한 목적으로 출범한 IMF가 제 역할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IMF는 미국의 막대한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미국의 내수 증가 억제와 유럽 및 일본의 내수 확대를 요구하고 있지만 모두 '소 귀에 경 읽기'라고 신문은 전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