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오갈 선생 추억속으로…] 네칸 만화에 담은 해학과 풍자 15년


새벽 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6시 30분.그가 편집국 문을 열고 들어선다.


어제와 똑같은 시각이다.
밤새 판갈이 하느라 북적대던 야근 기자들의 열기가 아직도 느껴진다.


그는 차분하게 자리에 앉아 조간신문들을 하나하나 들춘다.


'소오갈 선생'을 연재한 지 어느덧 15년.이 순간은 늘 그렇다.
심마니가 산에 오르기 전에 산제를 지내는 기분이다.


아이디어를 짜내느라 상상의 고개를 넘나들 땐 산을 헤매는 것 같다.


그러다 영감이 번뜩 떠오르면 "심봤다!"를 외친다.
아니 "욕봤다!"는 표현이 딱 맞다.


심마니는 한 달에 한 번,아니 일 년에 한 번 산삼을 캐도 그만이지만 네칸짜리 시사만화가는 매일 산삼을 캐야 한다.


그렇게 4590번의 산삼을 캤다.
'소오갈 선생'의 첫 컷을 그린 때는 1991년 2월.그때는 사회 분위기가 매우 우울했다.


사람들의 마음도 모래알처럼 서걱거렸다.


안백룡 화백은 각박한 사회에 희망을 주고 싶었다.


시사만화의 핵심은 사회 현상의 급소를 찔러 사람을 감동시키는 '촌철살인'.그렇다고 날카로운 칼날만 번뜩여선 안 된다.


풍자와 해학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는 예리하면서도 인간적인 모습을 함께 지닌 주인공을 등장시켰다.


어떨 땐 우둔하고 투박하며 질박하기까지 한 캐릭터.안경을 끼고 세상물정에도 어두운 듯한 인상.그러나 가슴 속에 세워둔 기둥처럼 누가 뭐래도 줏대있게 살아가는 가치관을 지녔다.


경제신문 사상 최초의 시사만화 '소오갈 선생'은 그렇게 탄생했다.


소오갈은 어수룩한 듯하면서도 비정한 세상을 역공하는 기지를 한껏 발휘했다.


그동안 명예퇴직이나 고개숙인 아버지들,날로 뛰는 물가,노사 문제 등 수많은 사회 현상에 렌즈를 들이댔다.


추석이나 태풍,파병 문제,불경기 등도 그의 펜 끝에서 거듭났다.


그야말로 당대의 모든 현안을 두루 다뤘다.


그중에서도 비판의 칼날을 가장 많이 겨눈 게 정치판이었다.


우리 정치는 개개인의 일상에 '너무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잘못하면 경제의 발목을 잡고 서민들의 아드레날린 분비를 자극한다.


밉살스런 짓만 골라 하는 정치판을 향해 소오갈이 던지는 비수는 그래서 짜릿하고 통쾌하다.


어느날 소오갈이 은행장에게 "5조원은 왜 덥석 줬소?"라고 따진다.


은행장은 "난 하명대로 했소"라고 답한다.


그리고는 또 돈보따리를 들고 어디론가 간다.


그런데 그 은행장의 등엔 태엽이 붙어있다.


누군가가 태엽을 틀어준 게 틀림없다.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한보사건의 개요를 그는 이 한편의 만화로 요약했다.


이렇듯 정곡을 찌른 작품이 나왔을 때 독자들은 갈채를 보낸다.


시사만화는 그야말로 짧은 순간에 사태의 핵심과 본말을 정확하게 파악해 독자들에게 농축된 메시지를 전달하는 장르.그만큼 그리는 사람의 내공도 일급이어야 한다.


안 화백은 3000회 돌파 소감에서 "만화가 마음에 안 들 땐 빨간 줄도장이 찍힌 수표를 갖고 있는 기분"이라고 토로했다.


4000회를 넘길 땐 "내용에 불만을 갖고 전화로 화내신 분과 참 좋았다고 칭찬해주신 독자분 모두가 저의 참 스승"이라고 말했다.


이제 그는 4590회의 대장정을 끝내고 '참 스승'들의 곁으로 돌아간다.


매일 태어나고 매일 죽는 '소오갈'의 끈질긴 생명력은 이제 우리들 추억 속에서 영원히 빛날 것이다.


매일 죽어서 매일 태어나는 그 힘으로,내일 다시 떠오르기 위해 오늘 지는 저 태양처럼 뜨겁게….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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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백룡 화백은… ]


충북 충주 출생

1973-1982 동아일보 기자

1982-현재 한국경제신문 기자

1991 시사만화'소오갈 선생'연재 시작

1999 한국시사만화전(서울애니메이션 센터)

2000 밀레니엄 공동전(안산 난문화전시실)

2001 소오갈 안백룡 유화전(서울갤러리)

2003 대한민국 中心展(서울갤러리)

2003 애니메이션 센터 초청 만화전

2004 대한민국 中心展(서울갤러리)

2004 한국작가 100인 홍콩초대전(홍콩한인교민회관)

2004 소오갈 안백룡 유화전(서울갤러리)

2004 중ㆍ한 현대작가 교류전

2004 2004년도 연하장 채택(정통부 우정사업본부발행)

2005 소오갈 안백룡 유화전(예술의 전당)


現 ㆍ한국경제신문사 편집국 편집고문 화백

ㆍ한국시사만화가협회 부회장

ㆍ서울중구미술인협회회원



만난다는 것은 언젠가는 헤어진다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33년 전 신문과의 만남은 기쁨 그 자체였습니다.


왜냐하면 만화가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왔기 때문이지요.


또 독자들과 희비를 나눌 수 있었다는 것도 크나큰 보람입니다.


이제 소오갈은 4589회를 끝으로 독자 여러분과 이별을 고합니다.
그동안 소오갈을 사랑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소오갈 안백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