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35 세대가 한국을 바꾼다] 정치.사회 (4) 풍요로운 싱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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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만 싱글족,귀한 몸 되다."
#광고회사 카피라이터로 5년째 근무 중인 김정인씨(32·여)는 지난해 12월 백화점 세일 기간에 140만원을 호가하는 겨울 외투를 장만했다. 이로써 그의 장롱엔 7벌째 외투가 들어서게 됐다.
"저만의 스타일이 있는데 다른 사람이 똑같은 옷을 입으면 기분 나빠요. 그래서 특이한 옷을 사는 거죠." 그는 '먼 훗날의 행복보다는 지금의 행복이 더 중요하다'는 게 생활모토다.
#홈쇼핑사에서 일하고 있는 최병호씨(34).그는 미식의 세계에 푹 빠져 있다.
특히 와인이 그를 매료시킨다.
"일본에선 프랑스산 최고급 빈티지를 산지보다 싼 가격에 구할 수 있죠.저의 일본 여행은 주로 와인 구입을 위해서입니다."
'풍요로운 싱글족(族).' 2635세대의 또다른 코드다.
이들은 소비시장의 '슈퍼 소비자(super consumer)'로 군림하며 기업 마케팅의 주요 타깃으로 떠오르고 있다.
386세대가 이념 위주의 오피니언 리더라면 2635세대의 싱글들은 패션 가전 등 소비와 관련된 거의 전 분야를 누비며 '트렌드 제조 공장' 역할을 하고 있다.
◆싱글 여성은 의류와 외식,남성은 유흥비에 '올인'
무엇이 2635세대에 속한 싱글족을 '귀한 몸'으로 만들고 있는 것일까.
한국경제신문은 GS리테일과 롯데마트에 근무 중인 26∼35세 싱글 남녀 27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지출이 많은 항목을 물어봤다.
싱글여성은 응답자 101명 가운데 44.5%인 45명이 의류 신발 액세서리 등 패션관련 제품을 최대 지출 품목으로 꼽았다.
외식 및 식비,저축,문화생활 등이 뒤를 이었다.
남성의 경우 177명 중 47명이 응답한 유흥비가 1위였고 외식 및 식비,주거비,차량유지비,저축 등의 순으로 씀씀이가 큰 것으로 조사됐다.
이세진 제일기획 차장은 "정말 원하는 것이면 돈을 아끼지 않는다는 게 이들이 386세대의 싱글과 구별되는 가장 큰 차이점"이라며 "실제 지난해 12월 실시한 설문에서도 '값 비싼 브랜드를 구입하기 위해 돈을 모아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2635 싱글족의 비율은 386세대보다 10.8%포인트,2635 기혼자와 비교해도 13.2%포인트 높았다"고 말했다.
◆싱글족,주류(主流)로 부상하다
지난해 11월 크레디리요네(CLSA) 증권은 싱글족의 파워에 대해 흥미로운 분석 보고서를 내놨다.
'싱글족(singles)이 새로운 주도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2007년에는 아시아의 싱글족이 인구 비중 12%에 달하는 데다 이들이 자동차 IT제품 등 주요 소비재의 절반가량을 소비할 것이란 전망이었다.
이 같은 추세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이연수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1인 가구수가 최대 600만명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 가운데 젊은 싱글은 최소 100만명에 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해 7월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의 인구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20대 여성의 미혼율은 69.3%로 5년 전에 비해 7.1%포인트,70년과 비교해 두 배로 늘어났다.
2004년을 기준으로 한 초혼연령에서도 남성(30.6세)과 여성(27.5세)은 각각 10년 전보다 2.2세,2.1세 늦춰진 것으로 조사됐다.
◆소비 트렌드 리더
전문가들은 강력한 구매 파워에다 양적인 세력 팽창까지 더해진 싱글족을 단순한 틈새시장 정도가 아니라 소비시장의 새로운 트렌드를 이끄는 집단으로 봐야 한다고 진단한다.
이세진 차장은 "매스티지(mastige·대중화된 명품) 상품의 등장이나 가전시장에 불고 있는 '미니(mini) 바람', 여러 기능을 탑재한 가전제품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도 진원지엔 싱글족의 '라이프 스타일'이 자리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정희 삼성패션연구소 과장은 "재킷에 청바지를 입고 스니커즈를 신는 '뉴요커 스타일'도 싱글들이 주도한 패션"이라며 "이들은 매출 비중이 작더라도 스타일을 주도하면서 40,50대 패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홍용기 롯데백화점 대리는 "싱글 여성을 타깃으로 삼고 있는 에고이스트 오즈세컨 보브 등의 영 캐주얼 브랜드가 경기 불황에도 불구하고 최근 3년 동안 매년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할 정도"라고 소개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