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완장공포증과 실적증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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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소비자보호원이 "할인점에서 판매하는 오리털 점퍼의 솜털 함량이 표시보다 턱없이 모자란다"는 발표를 내놨다.
곧바로 유통업체와 제조업체에 확인했다.
양쪽 주장이 달라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어 기사화하지 않았다.
대신 두 가지 현상을 목격했다.
#이마트의 '완장 공포증'=소보원 보도자료에는 '이마트'라는 단어가 네 번이나 등장한다.
모두 "품질이 형편없다"는 서술구의 주어(主語) 자리다.
자료만 보면 '이마트는 질 나쁜 제품을 속여 파는 악덕 유통기업'이라고 써야 할 판이었다.
이마트의 A부장에게 "이 얘기가 맞느냐"고 물었다.
그는 "유구무언"이라며 입을 닫았다.
다른 루트를 통해 해당 점퍼를 납품한 업체에 물었더니 얘기가 달랐다.
며칠 후 A부장을 다시 만났다.
그는 "납품업체만 불쌍하다"며 가슴을 쳤다.
자체 재조사 결과 함량에 별 문제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지만 보복이 두려워 잠자코 있었다고 했다.
전에 소보원이 할인점 녹차를 문제삼았을 때 반발한 것 때문에 이번에 새삼 이마트가 크게 부각된 것으로 보고 있었다.
#소보원의 실적 증후군=의류업계는 관행적으로 오리솜털 함량 표시에 '미 연방거래위원회(FTC)' 기준을 따르고 있다. 반면 소보원은 KS기준에 의해 솜털 함량을 검사했다.
FTC는 일부 털오라기를 솜털로 봐주는 반면 KS기준은 더 엄격히 솜털을 판정하도록 했다.
이번에 걸려든 납품업체 사장들은 하나같이 "KS기준이 있는지도 몰랐다"고 입을 모았다.
한 업체 사장은 "잣대가 다른 걸 '허위표시'라고 때리면 어떡하느냐"며 "소보원에 재검을 요구했지만 자료 배포 시한이 정해져 있어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이번 일로 판로가 막혀 이미 수천만원대의 손해를 봤다.
과거 식약청에 의해 불량만두 제조업체로 지정됐다가 하루 만에 무혐의 처분된 취영루가 다시 일어서기까지는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소보원은 무조건 실적을 올려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일방적인 발표로 인해 억울한 사람들이 없도록 먼저 살펴야 할 것이다.
매도 이유를 알고 맞아야 반성의 계기가 된다.
차기현 생활경제부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