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35 세대가 한국을 바꾼다] 경제 (6) 해외소비 1세대

건축설계회사에 다니는 이정은씨(30)는 지난 연말 1주일간 휴가를 내고 영국으로 '크리스마스 떨이 쇼핑' 여행을 다녀왔다.


크리스마스 할인행사를 여는 런던의 백화점이나 아울렛을 돌면서 평소 찍어 두었던 유명 브랜드 정장과 핸드백을 샀다.
크리스마스 직후 재고상품을 박스채 쌓아놓고 파는'박싱데이(boxing day)'에는 국내보다 60~70%까지 저렴한 값에 버버리 갭 자라 등 이씨가 좋아하는 명품을 장만할 수 있었다.




이씨는 쇼핑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1년 내내 택시를 거의 타지 않고 도시락을 싸 다닐 정도로 몸에 벤 짠돌이 생활을 해왔다.
2635세대는 하필 부자가 아니라도 '자신만의 개성을 살리고 갖고 싶은 것'을 사는 데 비용을 아끼지 않는다. 그 대신 다른 생활비를 철저히 아끼는 기획쇼핑족들이다.


모 시중은행원 박은숙씨(31)는 "국내 명품관의 반값에 사는 만큼 비행기와 모텔비는 빠집니다. 그래서 연말이면 해외여행을 겸해 런던 파리 밀라노행 비행기 티켓을 사는 친구들이 한둘이 아닙니다"라고 전했다.


386세대가 해외유행상품이 들어오길 손꼽아 기다리는 수준이었다면 2635세대는 직접 나가 구입하거나 아예 인터넷으로 주문한다.
권업 계명대 교수는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며 수출전선을 누비던 부모들을 따라 해외생활을 익힌 신세대들은 '세계는 넓고 살 것은 많다'는 것을 체험한 첫세대"라면서 "이들이 교육에서부터 쇼핑에 이르기까지 한국 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나가면 된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고 진단했다.


◆해외 문화시장과 직접 접속


1990년대 대학생활을 한 2635세대에 외국은 결코 먼 나라가 아니다.
이들은 해외여행 자유화 시대의 첫 수혜자로 어학연수나 배낭여행 1세대다.


제일기획 브랜드마케팅연구소가 작년 10월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386세대의 해외여행 경험자 가운데 17.7%만이 배낭여행 연수 유학 등 자기계발을 이유로 해외로 나섰던데 비해 2635세대는 그 비율이 46.6%로 급상승한다.


대기업에 다니는 고민철씨(33)는 지난해 7월 세계적인 인터넷 서점 '아마존닷컴'에서 해리포터 여섯번째 시리즈 'Harry Potter and the Half Blood Prince(해리포터와 혼혈왕자)'를 주문했다.


영어권 국가에서 출간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곧바로 예약 구매했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열성팬인 고씨는 한글판으로 번역돼 나오는 몇 개월을 굳이 참지 않는다.


이런 고객들을 노리고 위즈위드 엔조이뉴욕 오렌지플러스와 같은 해외구매 대행 업체들이 국내에 수백개가 성행 중이다.


◆국내에서도 세계 일류만이 먹힌다


부모를 따라 중학교 때 미국생활을 했고 대학시절 어학연수까지 다녀온 최승웅씨(29)는 수원에 사는 데도 불구하고 1주일에 한 번씩 서울 압구정동에 있는 '크리스피크림도너츠'에 들른다.


최씨는 "예전에 미국에서 매일 먹던 맛과 똑같아 자주 찾는다"고 말한다.


이들은 시장개방을 가속화시키는 한편 국내 기업에 "세계 최고의 품질과 서비스가 아니면 안통한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던지고 있는 것이다.


일반 패밀리레스토랑 등이 '한국화된 맛'을 선보이는 데 반해 크리스피크림도너츠와 같은 업체들은 '현지의 맛을 그대로' 제공한다는 모토를 내걸고 신세대의 글로벌 감각에 어필하고 있다.


이 회사 이경민 대리는 "매장당 하루에 1000만원 정도 매출을 올린다"며 "어학연수나 외국유학을 경험했거나 어린 시절을 미국에서 보낸 20대 중반~30대의 젊은층이 주요 고객"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럭셔리한 입맛은 다른 상품이나 서비스시장에서도 세계적인 수준을 요구한다.
MP3플레이어 제조업체 레인콤의 한 관계자는 "어려서부터 소니나 아이와 워크맨을 사용하며 자란 세대인 만큼 국산품을 애용하자는 말은 전혀 통용되지 않는다"며 "애플 등 해외 유명 브랜드 제품보다 추가 옵션과 기능성이 앞서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건 당연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