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이제는 소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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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기계 산업이 지난해 수출 200억달러를 훌쩍 넘어서며 2년 연속 무역흑자를 실현한 것은 한편의 드라마 같은 반전이었다. 뿐만 아니라 부품소재 산업은 4년 연속 수출 증가세를 이어가며 200억달러대 흑자를 기록, 한국 경제의 희망으로 부상했다. 이들 분야에서 일본 얘기만 나오면 한숨밖에 안 나오던 시절이 불과 엊그제였고, 아직도 고급기술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위상은 여전하지만 우리도 해 볼 만하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런 여세를 몰아 올해는 특히 소재 분야에서 새로운 도전들이 속출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사실 한 단어처럼 들리는 부품소재도 '부품'과 '소재'로 나누어 보면 소재에 관한 한 일본의 벽은 아직도 높기만 한 것이 사실이다.
통계를 들이댈 필요도 없이 요즘 많이 얘기되고 있는 친환경 자동차만 보더라도 그렇다. 일본이 하이브리드 자동차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초였다. 소재 등 핵심기술력이 이미 상당부분 축적돼 있다는 얘기다. 연료전지차 역시 마찬가지다. 일본 의존도를 낮추기란 아직도 멀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우리나라가 제조업의 부가가치를 높이고자 한다면 끊임없이 산업의 업스트림(up-stream) 쪽으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이다. 소재는 바로 그 업스트림의 정점에 있다. 물론 소재는 욕심만 낸다고 되는 분야는 아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대표적인 기술집약적인 분야이고, 막대한 자본과 장기간이 소요되는 선진국형 산업이다. 진입장벽이 매우 높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절호의 기회가 다가오고 있다. 선진국의 경우 자동차 우주항공 등 전방산업들이 글로벌 시장을 무대로 발전하면서 소재산업도 발전했다. 발전궤도로 보면 우리나라 역시 전자 자동차 조선 등 전방산업들의 글로벌화로 소재의 수요기반이 마련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기회를 살려야 한다.
나노기술의 등장도 그렇다. 우리나라 전자산업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변화과정에서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맞이했고 일본에 자신감을 갖게 됐다. 마찬가지로 나노기술 등 신기술에서 우리가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낸다면 소재분야에서도 새로운 기회가 오지 말란 법이 없다. 일본이 기술을 이미 축적한 기존 소재의 국산화에만 몰두하지 말고 아예 새로운 소재에 도전해 볼 만하다.
한마디로 정부와 기업이 소재산업 육성에 본격적으로 나설 시기가 왔다. 그리고 이참에 '부품소재=중소기업'이란 고정관념 같은 것은 과감히 버렸으면 한다. 막대한 자본,기술과 지식의 집약도를 생각하면 소재산업에서 대기업의 역할은 분명히 있다. 대기업들이 이 분야에 적극적으로 뛰어 들고 중견.중소기업들이 일본 기업들처럼 틈새시장에서 세계 선두가 되겠다는 전략(global niche top)으로 나간다면 소재 공략은 효과적일 수 있을 것이 분명하다.
일본이 장기침체를 겪었다고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소재기업들은 일본 제조업의 버팀목 역할을 했다. 다른 분야 기업들이 중국이나 동남아로 앞다퉈 빠져나가 제조업 공동화 논란이 거세게 일기도 했지만 소재기업들은 일본에 남아 기술력을 지켰다. 소재는 그래서 더욱 의미있는 분야인지도 모른다.
논설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