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대통령이 남길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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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계섭
2년 정도 남은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임기의 마지막 해는 레임덕 현상이 본격화된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제야말로 후세에 남기고 갈 역사적 유산을 심각하게 고민할 때다.그렇다면 대통령이 남겨야 할 유산은 어떤 것이 있을까? 그것은 아마도 정치 개혁일 것이다.선거와 같은 정치 과정에 소요되는 비용을 줄이고 정경유착과 같은 정치과정의 부정적 부산물을 근절하는 개혁이 참여 정부의 역사적 유산이 될 수 있고,되어야 하는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다른 업적을 남기기 어렵다.2002년 대선의 선거공약으로 내세운 연평균 경제 성장율 7% 달성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2년 안에 우리가 동북아시아의 물류,금융 허브가 될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일본과 중국 사이의 힘의 균형자가 되겠다는 구상은 희망일 뿐이다.왜냐하면 이를 뒷받침해줄 만한 투자나 노력이 뒤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지역감정 해소는 새로운 복병을 만났다.수도 이전 사업으로 인해 기존의 영,호남 사이의 지역감정 위에 수도권과 비수도권,충청권과 비충청권 사이에 불신과 질시의 감정이 자라났다.
둘째,상대적으로 달성하기가 쉽다.위에서 열거한 목표들을 달성하기 어려운 이유는 수 많은 이해 집단들의 반발을 아울러야하기 때문이다.과도한 재정 지출에 대한 우려도 정책 집행을 가로막는다.반면 정치 개혁에 소요되는 재정 지출은 무시할 수 있을 정도다.정책 집행을 가로막을 이익 집단의 수도 훨씬 적다.정치 개혁은 언제나 대다수의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 몇 안되는 개혁안 중 하나다.
셋째,경제발전에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다.정치 개혁은 국가 운영에 있어 거래비용을 줄일 수 있다.각종 선거에 동원되는 인력과 자금을 대폭 제한함으로써 고비용,저효율의 정치를 저비용,고효율로 바꿔줄 수 있을 것이다.기업과 정치권 사이에 검은 밀실 거래를 종식시킬 경우,국민들 사이에 기업들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줄이는 데도 일조할 것이다. 한편으로 우리 기업과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질 수록 보다 많은 해외 자본을 유치할 수 있다.
물론 말처럼 쉽지 않은 것이 정치 개혁이다.개혁은 정치권이 제 목에 방울을 다는 격이기 때문이다.특히 재집권 가능성이 불투명한 집권당이 정치 개혁을 실행하기란 어쩌면 무모해 보이기까지 하는 결단을 필요로 한다.실제로 과거에 비해 엄격하게 선거관리법을 적용시킨 결과,총선과 보선에서 여당 후보들이 당선 무효 판결을 받는 장면이 잇달아 연출됐다.집권당의 지지율이 20퍼센트 밑으로 추락한 현 시점에서 정경유착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선거 자금과 방법에 제한을 가하는 개혁은 재집권 가능성 자체를 봉쇄할지 모른다.
그래서일까? 곳곳에서 후퇴의 징조가 보이고 있다.여권 내에서는 정치 자금법과 선거관리법을 현실화하자는 목소리가 들려온다.2002년 대선 자금 수사는 개혁 의지에 물음표를 달게 했다.깃털만 잡아들이고 대선 자금 수수에 최종적인 책임을 져야 할 몸통은 빠져나갔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수사가 서둘러 종결됐다.지난 해 광복절에는 헌정 사상 최대 규모의 사면이 있었다.각종 경범자들을 대거 사면해서 준법 정신을 훼손했던 것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사면 대상에 불법 선거와 정치 자금 수수로 구속된 인사들이 대폭 포함됐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노 대통령은 대단히 어려운 결단을 해야한다.정치 개혁을 뒤로 미루거나 후퇴시킬 경우,후대에 노 대통령이 개혁 대통령으로 기억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눈 앞의 이익에 좌우되는 정치꾼으로 남을 것인가,아니면 소아보다는 대아를 택하는 리더십을 발휘할 것인가. 국민들은 모두 노대통령의 결단을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