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뉴스확대경] 통신시장 지각변동

기존의 망을 보유하고 있던 망 운영자들은 새로운 경쟁 상대의 등장을 반가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서는 '경쟁을 촉진하는 것이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바람직하다'는 인식 하에 정부가 경쟁 업체에 대한 망 개방을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 이론적 기초는 필수설비 이론(essential facility theory)이다. 즉 통신 전력 가스 철도 항만 등 대규모 투자를 필요로 하는 부문의 경우 각 사업자가 기반시설을 제각각 마련해야 한다면 중복투자로 인해 국가 경제 전체적으로 낭비와 비효율을 낳을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 동안 독점적이었던 사업에서 새로운 신규 진입자에 의한 경쟁이 촉진되어 소비자들에게는 요금 인하나 새로운 서비스와 같은 형태로 이득이 돌아오게 된다. 이를 위해 이미 갖춰진 설비를 공공의 필수설비로 정해 적절한 사용료를 지불하는 모든 경쟁업체에 개방하도록 한 것이다. 앞서 언급한 가상 이동통신망 사업은 이러한 필수설비 이론이 이동통신사업에 적용된 좋은 예다. 현재 가상 이동통신망 사업을 벌이고 있는 기업은 유럽,미국 및 호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버진모바일,덴마크의 텔모어 등 전 세계적으로 200여개에 이른다. 가상 이동통신망 사업에는 크게 두 가지 사업 방식이 있다. 하나는 단순한 전화 통화나 단문자서비스(SMS) 같은 기존 통신서비스를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하는 가격 파괴형 사업이고,다른 하나는 새로운 소비자 층을 발굴하거나 새로운 부가가치 사업을 개발하는 경우다. 첫 번째 모형에 가까운 대표적인 사례가 버진 모바일이다. 이 회사는 독자적인 브랜드와 사업 전략을 바탕으로 선불제 방식의 저렴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유럽 최대의 할인 전문점인 알디(Aldi)도 할인점 사업으로 획득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저렴한 가격을 승부수로 띄우면서 통신 서비스 사업에 뛰어들었다. 다른 모형은 최근 유럽에서 제시되고 있는 범 유럽 차원의 가상 이동통신망사업인 'MVNO 글로벌'과 같은 모형으로 새로운 네트워크의 형성과 다양한 신규 서비스를 기반으로 새로운 시장 또는 고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전략이다. 예를 들어 한국과 일본의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기술을 개발한다면 우리나라 고객은 우리나라에서 일본 업체가 제공하는 무선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할 수도 있게 된다. 이 경우 망 사업자는 자신의 고객을 망을 빌려쓰는 경쟁업체에 넘겨주지 않고도 망 임대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자신의 망이 여유가 없다 하더라도 막대한 망 임대 수익이 예상된다면 망 설비투자를 늘려 가상 이동통신망 사업자를 유치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일반적인 이론에서도 보았던 것처럼 이동통신사업의 경우에도 가상 이동통신망 사업의 도입과 함께 소비자들은 경쟁의 확산에 의한 이익을 누리게 될 것이다. 단순히 이동통신 요금이 인하될 수도 있고 아니면 지금까지는 없었던 전혀 새로운 국제적인 서비스를 향유할 수도 있다. 이러한 것이 바로 경쟁을 통한 후생의 증가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소비자가 원한다고 해서 가상 이동통신망 사업이 곧바로 도입된다는 보장은 없다. 망을 빌려 쓰고자 하는 통신 서비스 업체와 통신 서비스 대리점 역할을 하는 독립적인 서비스 사업자가 충분히 있어야 하며,기존의 망 운영자가 잠재적 경쟁업체들에 망을 빌려주는 데 대한 제도적인 뒷받침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 유럽의 경우 이동통신 사업에서 대체로 네트워크 운영자와 서비스 사업자가 분리돼 있는 경우가 많다(그림). 즉 고객과 네트워크 운영자 사이에 다양한 서비스 사업자들이 있어 이들이 독자적으로 네트워크 사업자나 가상 이동통신 사업자 중 선택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서비스 사업자의 망 운영자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편이며 네트워크 운영자가 서비스 사업자까지 겸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다른 국가들에서와는 달리 정부는 여건이 무르익지 않았다는 판단 하에 가상 이동통신망 사업 도입을 미뤄왔다(표). 하지만 통신서비스 산업에서의 국제 경쟁력 강화와 소비자 효용 증대를 위해 우리 정부도 설비 기반 경쟁을 서비스 기반 경쟁으로 전환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가상 통신망 사업이 도입되면 우리나라 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기존의 정보기술(IT) 및 통신 사업에서의 경쟁력과 신규 경쟁자들의 새로운 사업모델이 결합되어 우리나라 통신산업이 한 단계 더 도약하는 데 중대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서원 책임연구원 swlee@lger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