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수익 240억‥적자인생 면했죠" ‥ '왕의 남자' 이준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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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30대에 대박을 터뜨렸다면 그것이 인생에 나쁜 영향을 줬을지도 모릅니다. 유명세란 게 족쇄니까요."
11일 관객수 1000만명을 돌파할 전망인 '왕의 남자'의 감독 겸 제작자인 이준익 씨네월드 대표(47)는 담담하게 '대박소감'을 밝혔다. 그는 요즘 자신에게 쏟아지는 찬사가 오히려 부담스럽다고 했다.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심한 부침을 겪으면서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는 지혜를 터득했기 때문이다.
"성숙된 자본주의란 성과와 성분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과보다는 오히려 성분이 중시되는 사회가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어쨌든 '왕의 남자'로 적자인생을 면하게 된 것은 기쁜 일입니다."
그가 연출한 전작 '황산벌'과 제작에 참여한 '달마야 놀자'가 흥행에 성공했지만 'K19''존큐''투게더' 등 수입외화들이 참패하면서 30억원가량의 빚을 졌다. '왕의 남자' 흥행수입은 입장수입 300억원에서 총제작비 60억원을 빼면 240억원 정도된다. 투자사와 공동제작사(이글픽쳐스)의 몫을 제하고 이 감독에게 돌아오는 돈은 약 48억원. 빚을 청산하면 대략 18억원이 남는다.
"저는 영화를 선택할 때 어떻게 이야기할까보다는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를 먼저 고려합니다. '왕의 남자'의 원작 희곡을 처음 접했을 때 제가 영화에서 일관되게 추구해온 주제와 동일선상에 있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주류를 조롱하고,비주류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왕의 남자'에서는 광대라는 하층민이 주류의 상징인 왕을 조롱함으로써 신분과 계급을 무색하게 만든다. 광대 장생의 입에서 나오는 거침없는 사설이 엄격한 사회 시스템에 갇혀 있는 현대인의 자유에 대한 본능을 만족시키면서 흥행성공으로 연결됐다고 그는 분석한다.
"연산은 콤플렉스,즉 업(業)을 대변하고 광대는 한(恨)을 대변합니다. 한과 업이 충돌하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요. 그런데 극중 인물의 고통이 현대인의 아픔보다 훨씬 큽니다. 관객은 자신보다 더 고통스런 인물을 보면서 위안을 얻습니다. 고통을 통해 페이소스에 이르고 페이소스를 거쳐 카타르시스에 닿는 거지요."
절체절명의 순간 희비극을 여류롭게 오가는 해학도 흥행요인의 하나로 꼽힌다. 이 감독이 우리 전통 속에 있는 웃음의 미학을 극중 인물에 성공적으로 녹여낸 결과다.
"유머와 위트보다 미학적으로 우수한 게 해학이죠. 애드립을 하고 혓바닥을 내미는 짐 캐리나 어리버리한 미스터빈의 코미디에 비하면 더 고급스런 코미디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 감독은 차기작 '라디오 스타'를 준비 중이라고 했다. 박중훈과 안성기 주연의 이 작품도 한물 간 록가수라는 주변 인물의 삶을 다룬다.
세종대 회화과를 중퇴한 그는 지난 1987년 영화광고대행업으로 영화계에 뛰어들었다. 1993년 씨네월드를 설립하고 창립작 '키드캅'을 연출하면서 제작자 겸 감독의 길을 걸어왔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