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감동을 파는 러브매니저 '강민.전종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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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테헤란로의 한 외국계 금융회사. 9일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 사무실 한켠이 갑자기 술렁인다.
기타를 든 가수가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러 왔다"며 '오 솔레미오'를 부른다. 노래를 끝낸 가수는 가슴뭉클한 사연의 편지를 읽는다. "경렬씨가 수진씨께 전하는 화해의 편지입니다." 가수의 전언에 사무실은 떠나갈 듯 환호성이 터지고 그녀는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특별한 순간을 만드는 사람들.'러브 매니저'들이 그들이다.
"감동을 파는 직업이죠.1시간짜리 이벤트를 위해 보통 하루 꼬박 준비합니다."
이벤트업체 러브센스에서 일하는 강민씨(33)의 목소리에 자부심이 묻어난다.
7년 전 평범한 샐러리맨이던 강민씨는 개인경험을 살려 사업을 시작했다. "토라진 여자친구를 어떻게 기쁘게 해줄까 고민하다가 이벤트를 준비해본 게 사업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장미와 노래로 그녀를 감동시키는데 성공한 그는 "사랑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한 이벤트사업을 해보자"고 마음먹고 '러브센스'를 준비했다.
대학로에서 통기타 가수이자 공연기획자로 일하던 전종현씨(33)를 만나면서 사업이 본궤도에 올랐다.
1999년 창업초기엔 사랑이벤트 자체가 생소했다.
한 달에 한 건 하고 8만원을 받기도 했다. 지금은 5명의 러브 매니저가 한 해 700여 쌍을 위한 사랑 이벤트를 진행한다.
강씨는 이벤트의 성격도 세태에 따라 달라졌다고 전한다.
"초기엔 20대 초반 젊은이들이 기념일용 깜짝 이벤트를 많이 주문했습니다.
3년여 전부터는 20대 후반 30대의 프러포즈와 화해 등의 오더가 밀리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인생경로를 바꾸는 순간을 기획 연출하는 만큼 준비작업이 007작전 이상이다.
"직장을 방문해 메시지를 전할 때 택배기사를 가장해 잠입하는 건 기본이죠.화해 이벤트는 상대가 계획을 알아차리고 거부하면 끝장입니다." 잠입 이벤트 과정을 설명하는 종현씨의 얼굴이 상기된다.
힘든 만큼 보람도 크다. 오랜 짝사랑이 약혼으로 맺어지고, 심하게 싸운 커플이 눈물로 화해하는 순간을 지켜보는 기쁨은 러브매니저만이 느끼는 특권이다.
"꽁꽁 얼어붙은 호수위에 불로 '용서해줘'라는 거대한 글자를 쓸 때면 고생스럽지만 이혼 직전이던 부부가 이벤트에 감동해서 화해하는 것을 보면서 고생한 보람을 만끽합니다."
강민씨는 지금까지 3000여 쌍의 러브이벤트를 전개했다.
그는 돈도 벌면서 남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자신의 직업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러브매니저들은 고객의 성격,직업,혈액형까지 고려해 맞춤형 이벤트를 제시한다.
이벤트에는 꽃 촛불 같은 소품에서부터 큰 건의 경우엔 애드벌룬이나 유람선 비행선까지 동원된다. 빅 이벤트는 한 건에 수백만원을 받는다고 한다. 외국에선 수백만달러짜리 러브이벤트도 한다고 강씨는 전했다.
"이벤트를 아무리 잘해도 결국 당사자의 '마음'이 결정적입니다. 이벤트는 고객이 스스로 풀지 못한 마음의 첫 단추를 열어주는데 불과합니다."
이들의 이벤트를 통해 잊지 못할 순간을 누린 커플은 3000여쌍에 이른다. 작년 11월 이들의 도움을 받아 일본인 여자친구에게 사랑고백을 했던 강동훈씨(35)는 "귀국을 하루 앞둔 그녀의 마음을 이벤트로 돌릴 수 있었다"며 흐뭇하게 회상했다.
이들은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좀 덜 가진 사람들,나이든 분들'을 위한 이벤트 대중화의 길을 열어보겠다는 것.
"얼마전 40대 중년의 전화를 받고 이벤트 현장을 찾아가보니 반지하방이더군요.
어렵게 살아온 부인의 생일을 맞아 남편이 이벤트를 주문했던 거예요.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도 누릴 수 있는 '국민 사랑이벤트'를 해보자는 목표를 세웠지요."
이 인정많은 러브매니저들은 이벤트가격을 낮추기 위해 '이벤트의 시스템화'를 연구중이다. 서비스의 표준화가 이뤄진다면 체인화 뿐 아니라 수출도 가능할 거라는 기대다.
글=김유미·사진=김정욱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