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인터뷰] 7년만에 동원그룹으로 '김재철 무협회장'
입력
수정
"미국에 출장을 수십번 다녀왔지만 나이애가라폭포나 그랜드캐니언 같은 곳에는 한번도 못가 봤습니다.
이젠 그런 곳에도 한번 가 봐야겠지요."
7년 임기를 마치고 22일 퇴임하는 김재철 한국무역협회 회장(71)은 "해방감도 들고,이젠 내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라면서 편하게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김 회장은 "그만두려고 하니까 더 바쁘다"며 여전히 일에 묻혀 살고 있다.
퇴임식 후 곧바로 강신호 전경련 회장,조석래 효성 회장 등과 함께 일본 출장길에 오를 예정이다.
지난 15일 서울 삼성동 무역센터 50층 회장실에서 만난 김 회장은 인터뷰가 시작되자 평소 소신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정부에 대해서는 "우리는 수출로 먹고 사는데 전쟁터와 같은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는 기업들의 사기를 더 북돋워줘야 한다"고 주문했고,최근 현안으로 떠오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서는 "큰 고기를 잡으려면 큰 바다에 나가야하는 것처럼 이왕 할 바엔 최대 시장인 미국과 조속히 하는 게 낫다"고 강조했다.
-재임 기간 협회는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인력을 정예화해 작지만 강한 조직으로 만들었습니다. 취임 당시와 비교해 인력을 절반으로 줄였습니다. 조직이 단단해진 것이지요. 그리고 이제 협회 직원들은 일을 위한 일이 아니라 성과 위주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을 내보낸 게 마음에 걸립니다. 저는 구조조정이란 말 대신 신진대사라는 표현을 쓰고 싶습니다.
신진대사는 조직에 꼭 필요한 것입니다."
-무역아카데미를 만들어 청년들의 해외취업 길도 터놓으셨죠.
"일본에서만 440명이 일하고 있습니다.
처녀 총각들은 거기서 결혼도 하고,한류 때문에 인기가 좋다고 합니다.
우리의 자원은 사람밖에 없지 않습니까.
특히 제일 큰 자원은 우수한 젊은 인력입니다.
국내에서 청년실업을 해소하더라도 다른 편에선 직업을 잃는 사람이 있게 마련입니다.
고무풍선처럼 말이죠.실제로 젊은이들을 강하게 교육시켜 해외에 취업시켜 보니까 안될 게 없더라고요.
가난했던 시절 광부와 간호사들을 독일로 보냈을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요.
정보기술(IT) 지식으로 무장한 한국인들이 요즘엔 각국의 신경계통에 들어가 일하는 것입니다."
-줄곧 한미 FTA의 필요성을 강조하셨는데…. 한미 FTA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21세기 전반은 아마 통상 협상의 시대로 기록될 겁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려면 우선 선진통상국가가 되어야 하는데,통상선진국이라는 것은 FTA 없이는 불가능하거든요.
수출도 늘릴 수 없고요.
FTA는 필수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왜 미국이냐 이 말씀이죠.미국은 가장 크고 치열한 시장입니다.
큰 고기를 많이 잡으려면 큰 바다로 나가야 되는 법입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이 들어가야 되고요.
멕시코가 우리에게 FTA를 체결하자고 했을 때 거절한 결과가 뭔가요.
이젠 우리가 하자고 해도 시큰둥하잖아요.
FTA도 때를 놓치면 혼기 놓친 처녀·총각처럼 되는 겁니다.
이왕 할 것이라면 미국부터 시작하는게 좋지요."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와 아쉬움이 있으시다면.
"그동안 틀을 바꾸는 과정에서 적잖은 혼란이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아쉬운 점은 우리가 세계를 상대하고 있다는 인식을 좀 더 가져 주었으면 하는 것이죠.세계는 경제전쟁의 시대 아닙니까.
전쟁터에 나가서 싸우는 것은 기업인데,기업들의 사기를 여러가지 측면에서 더 북돋워줬으면 해요.
그리고 참여정부의 적극적인 시장개방 정책은 매우 적절하다고 봅니다.
미국과의 FTA 협상에 들어간 것도 좋은 평가를 받을 것으로 봅니다."
-삼성의 8000억원 사회환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손으로 별을 가리키는데 별은 보지 않고 손가락을 보는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뜻을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곧 차기 회장이 추대될 텐데요…. 다음 회장은 어떤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무협은 지난 2003년부터 무차입 경영을 달성했습니다.
자립경영의 기틀이 마련된 만큼 앞으로는 공익적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사업이 확대 추진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차기 회장은 무엇보다 수출이 잘 되도록 지원역할을 할 수 있는 분이 좋지 않을까 합니다.
협회는 이미 단련돼 있어 더 이상 인원을 줄일 여지도 없을 정도입니다.
이런 직원들에게 동기부여를 잘 해주시는 분이라면 더 좋겠지요."
-창업 1세대 기업인으로서 2,3세 경영자들이나 후배 기업인들에게 조언해 주신다면….
"내가 아마 1987년에 한국능률협회가 주는 한국의 경영자상을 받았어요.
그런데 그 전에 상 받으신 분들은 다 돌아가신 것 같아요.
이제 문 닫아놓고 경쟁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세계 시장에서 경쟁해서 이겨야 되고,특히 스피드 경쟁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국내 시장에서는 돈 벌 게 많지도 않아요.
세계적으로 사고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회장님은 황우석 교수를 물심양면으로 후원해 오셨는데요….
"아직도 난 황 교수가 남을 속일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성격이 급하고 주위환경에 비해서 속도를 좀 위반했다고 할까.
뜸 들기 전에 솥뚜껑을 열려고 한 것이라고 봐요.
남을 속일 사람은 아니거든요.
동물 체세포 복제기술은 여전히 대단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잖아요.
과학이라는 것이 당장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것일 수도 있는데 좀 지긋이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끝으로 '바다'는 회장님께 어떤 존재입니까.
"바다를 기반으로 사업을 일으켰고 해군 해양경찰 해양수산부 등 바다와 관련된 곳과 관계를 맺지 않은 곳이 없으니 내 인생의 상당한 부문을 차지하겠죠.나도 그렇지만 우리 국민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다로 나가지 않고,바다를 활용하지 않고는 미래가 없다고 봐요.
수출화물 거의 대부분을 배로 실어나르지 않습니까.
어떤 모임에 가서 이런 얘기도 했어요.
한·중·일 3국이 협력해서 황해를 잘 보존해 양어장으로 바꾸자고요.
남획하지 않고 적절하게 보존한다면 지금보다 몇배나 더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무한한 가능성의 존재인 바다를 알리는 '바다의 전도사' 역할을 계속할 참입니다."글=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
사진=김정욱 기자 ha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