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한글의 외래어표기와 세계화

김영봉 김영삼 전 대통령의 심복 최형우씨가 어느날 은발(銀髮)머리를 노랗게 염색하고 상도동에 인사를 왔단다. "자네 웬 노랑머리가?"(YS) "이 머리가 요새 패션(fashion)이라 안 합니까?"(형우) "짜식,니가 패션의 피(p)나 아나?"(YS) 일부 한글예찬론자들은 한글이 어떤 언어라도 소리나는 대로 옮겨 적을 수 있는 표음(表音)문자라고 주장한다. 한글의 과학적인 조합 덕분에 이 점에서는 영어도 감히 흉내낼 수 없다고 한다. 과연 그렇다면 왜 이런 조크가 나왔는가. 적어도 로마자를 옮겨 표기함에 있어서 한글은 낙제점수다. 에프[f] 발음을 표기하는 글자가 없어서 에프가 들어가는 모든 영어어휘를 엉뚱한 말로 만들기 때문이다. 요새 청소년들은 끄떡하면 "필"이 꽂히고 "팬시" 숍을 즐겨 찾는다는데, 필자는 젊은이들이 곧잘 약[pill]에 취하고 여성용품[pansy] 가게에 잘 간다는 뜻으로 알았다. 그러나 실제 의미는 감(感·feel)이 꽂히고 환상적 소품[fancy]을 파는 가게란다. 대체 누가 이런 수수께끼를 알아채겠는가. 한글에서는 모든 에프를 피[p]로 표기한다. 양식기 포크[fork]는 돼지고기 포크[pork]로, 열광하는 팬[fan]은 요리기구 팬[pan]으로 쓴다. 이런 억지 표기사례는 너무나 많아, 다른 표음의 장점이 아무리 크다 해도, 한글은 국제소통언어로서나 국내소통의 말로나 절름발이신세를 면할 수 없다. 이 결함 때문에 글로벌 시대 우리말의 발전이나 아동의 영어교육이나 원천적으로 제약될 수밖에 없다 만약 한글에 에프를 표기하는 자음 하나만 있다면 이 모든 문제는 기적처럼 사라진다. 우리 한글예찬자들은 한글이 "현존하는 문자 중 유일하게 창제(創製)된 문자"임을 자랑한다. 이런 훈민정음 창제의 뜻은 그 후예들이 끊임없이 새로운 환경에 맞게 문자를 발전시켜 한글의 우수성을 이어가라는 것 아닌가. 그러나 해방 이후 지난 60년간 어떤 적응노력이 있었는가. 만약 세종대왕께서 오늘날 살아계신다면 지구촌으로 뻗는 나라 글과 백성을 위해 에프 발음의 글자 하나를 반드시 만들어주셨을 것이라고 필자는 믿는다. 한글이 세계적으로 우수한 글임은 우리국민 모두가 인정한다. 쉬운 글이 있는 덕분에 우리나라에는 문맹자가 전혀 없다. 그래서 다른 나라보다 국민의 지적 능력과 의지력이 한결 높아졌을 것이고 그동안의 비약적인 경제-사회발전도 가능했을 것이다. 세종대왕께서 500년도 더 전에 이렇게 편리하고 삶에 보탬이 되는 글을 만들었다는 것은 우리가 가진 세계적인 자랑거리이다. 정보산업발달과 지구촌 네트워킹[networking] 통합이 하루하루 달라지는 오늘날 한글의 미래 국제적 경쟁력도 더욱 커질 것이라고 한다. 한글인터넷주소추진연합회 신승일 박사의 말을 들어보자. "옥스퍼드 언어학대학에서 현존하는 언어를 과학성 합리성 독창성 기준으로 평가했을 때 한글은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컴퓨터 자판과 휴대폰에서의 한글 문자입력속도는 일본어나 한자는 물론 로마자보다도 빠르다. 또한 일자일음 일음일자 원칙의 한글은 타 언어보다 음성 인식률이 높아 다가오는 유비쿼터스 시대에 가전,통신,컴퓨터,로봇의 명령 언어로도 각광받을 것이다. 지식정보화시대에는 정보검색-전송 속도가 개인과 국가 경쟁력에 직결되므로 이런 한글을 쓰는 우리나라는 더욱 강하고 경쟁력 있는 IT강국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과연 한글은 무궁무진하게 뻗어나갈 자질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팔등신미인이라도 절름발이는 미스 월드가 될 수 없다. 피읖에 모자를 씌우든 새 글자가 됐든 "이제" 에프를 발음하는 자음 하나를 만들자고 한글문외한이 감히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