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전무 복숭아 농가 2년간 575억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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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지원이 실제 피해 여부와 관계 없이 이뤄지고 있는 이유는 정부의 지원이 정치적으로 결정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당시 농림부가 한양대에 의뢰해 분석한 한·칠레 FTA 관련 농업 피해액은 10년간 5860억원.그러나 2002년 협상 타결 뒤 농민들의 격렬한 시위가 이어지면서 비준이 1년 반을 표류하자 정치권은 수차례 증액 끝에 결국 7년간 1조2000억원을 지원키로 결정한 것이다.
비준이 이뤄진 2004년 2월은 4월 총선을 목전에 둔 시점이었다.
한·미 FTA를 추진 중인 지금의 사정도 그 때와 다르지 않다.
벌써부터 농민단체는 정권퇴진 운동을 포함한 대규모 시위를 계획하고 있다.
협상이 타결된다 해도 2008년 대선을 1년여 앞둔 2007년 말 국회에서 비준을 받아야 한다.
또 다시 정치적 결정에 의한 엉터리 지원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피해보다 20배나 많은 지원
2004년 한·칠레 FTA 발효 뒤 농산물 수입은 2003년과 비교해 2004년 47억원,2005년 224억원 등 271억원 증가했다.
그러나 증가액의 대부분은 사실상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는 포도주(2004년 50억원,2005년 89억원 등 139억원 수입 증가)가 차지하고 있다.
과일 등 신선 농산물만 따지면 증가액은 132억원인 셈이다.
이중 주요 피해 품목으로 지목된 포도 키위 복숭아 3개 품목만 보면 수입 증가액은 2004년 6억원,2005년 116억원 등 2년간 122억원에 그친다.
관세청 관계자는 "칠레의 경우 수송에 한두 달이 걸리기 때문에 포도와 키위를 뺀 다른 과일은 수입이 거의 전무하다"며 "복숭아의 경우 쉽게 무르는 데다 해충(코드림 나방)까지 발견돼 칠레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수입이 없다"고 설명했다.
◆수입 안 된 복숭아에도 거액
그런 데도 FTA 기금은 계획대로 집행되고 있다.
2004년 923억원에 이어 지난해 1720억원이 이미 지원됐고 올해는 1952억원이 투입된다.
특히 키위 포도 복숭아 재배 농가를 대상으로 폐업 지원,소득 보전을 해 주는 데 2004년 247억원,2005년 530억원 등 777억원이 이미 지원됐다.
이 중 4분의 3인 575억원이 전혀 수입되지 않은 복숭아 과수원 폐업에 쓰였다.
복숭아 폐업 지원엔 2010년까지 1964억원이 투입된다.
농림부 관계자는 "대부분의 폐업 농가는 나이 들어 농사를 그만두거나 과수가 늙어 채산성이 안 맞아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며 "문제는 있다고 느끼지만 농민들과 맺은 약속이기 때문에 지원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정치권 개입이 낭비 자초
한·칠레 FTA 법안은 2003년 7월 국회에 제출됐다.
그러나 농민과 시민단체의 반대 시위가 이어지면서 국회는 처리를 미뤘고 이 와중에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농민단체 대표들을 만나고 국회를 방문하기도 했다.
결국 세 차례나 연기된 끝에 2004년 2월16일 가까스로 비준안이 통과됐다.
이런 상황 속에서 피해 분석에 따른 지원 원칙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농림부 의뢰로 나온 한양대 용역 결과로는 한·칠레 FTA에 따른 향후 10년간 농업 피해 규모가 5860억원 수준이었다.
그러나 FTA 기금은 수차례의 증액 과정을 통해 1조5000억원(지방비 3000억원 포함)까지 늘어났다.
재정경제부 한 관계자는 "정치적으로 책정된 FTA 기금이 FTA로 인한 피해 영향을 확인하는 과정 없이 지원되면서 향후 FTA 추진 과정에서도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