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삼성이 강한 또 다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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梁奉鎭
"나는 삼성이 최첨단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오래전부터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했던 한 독일 굴지기업 총수의 말이다.
"그렇게 예감할 수 있었던 근거는 무엇인가"라고 묻자 그는 "삼성은 말(馬)에 관심을 갖고 있고 또 좋은 말을 고를 줄도 알기 때문"이라는 의외의 답을 들려주었다.
"아무리 좋은 천리마도 백낙(伯樂)을 만나지 못하면 빛을 발할 수 없다"는 옛말이 생각나서 "삼성이 인재를 잘 쓴다는 얘기냐"고 묻자 그는 "그런 깊은 뜻으로 말한 것은 아니고 삼성이 말을 매개체로 유럽 상류사회를 파고드는 섬세한 마케팅 전략을 구사해 온 점에 오래전부터 깊은 인상을 받아왔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자신이 사랑하던 말을 기려 저택 정원에 동상까지 세워놓고 있다는 이 독일인에게 삼성의 말에 대한 남다른 관심이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는지는 모르지만 우리 눈엔 다소 친숙하지 않은 마장마술(馬場馬術) 경기까지 후원할 수 있으려면 그만한 안목과 판단력이 필요했던 것은 사실일 것이다.
삼성의 세계 공략은 말(馬)에 그치지 않는다.
진돗개를 지난해 영국의 명견명부에 등록시킨 일등공신이 삼성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물론 이런 일은 그룹 총수의 관심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 같은 노력이 '개고기 먹는 국민'이라는 오명에 시달리는 한국과 한국 상품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적지 않은 공헌을 했을 것이라는 것은 불문가지다.
영국 프리미어 리그 첼시 구단에 거금을 투자 삼성 로고를 TV 화면에 올려놓은 삼성은 이제 프리미어 리그의 큰손으로 자리매김했을 뿐 아니라 다른 구단들의 구애(求愛)대상일 것이라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또한 때 맞춰 프리미어 리그에 진출한 박지성과 이영표의 몸값과 삼성의 프리미어 리그 진출에 상관관계가 없으리란 법 또한 없다.
지난주 제주도에선 삼성 후원의 작지만 쉽게 흉내 내기 어려운 음악회 하나가 열렸다.
지휘자 금난새씨가 주도한 '제주 뮤직 아일 페스티벌'이 그것이다.
미국 커티스 음대 출신의 예술가를 주축으로 한 보로메오,호주의 골드너 등 두 개의 사중주단을 포함, 프랑스 스웨덴 영국 등에서 초청된 중견 연주자 14명이 벌인 이번 음악회의 특징은 '실내악'이 지니는 독특한 분위기와 맛에 대한 이해에 맞춰져 있었다.
이 같은 소규모 실내악 향연을 기획한 동기에 대해 금난새씨는 "서양음악 역사는 적은 인원이 궁정이나 살롱에 모여 독주나 작은 규모의 앙상블을 즐기는 것으로부터 시작,점차 넓은 공연장에서 대규모 공연을 듣는 단계로 발전해갔으나 우리의 경우는 아예 처음부터 예술의 전당 같은 큰 공연장에서 듣는 오케스트라 연주가 클래식의 모두인 것처럼 여겨지게 된 아쉬움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소수 청중'의 중요성과 의미를 설명하는 대목이다.
실내악 청중은 많아야 40명 선에 그친다.
그러다 보니 해외 예술가들을 제주도까지 불러들이는 데 드는 적지 않은 경비가 문제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번 페스티벌은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 것이었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게 금난새씨의 공언이다.
이 같은 자신감은 '문화 경쟁력이 진짜 경쟁력'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또 후원의 손길을 마다하지 않는 기업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누군가 한국 기업인들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사람들'이라고 묘사한 적이 있다.
노사분규 현장의 구호나 검찰 포토라인에 서는 기업인들을 보고 있노라면 아직도 그 같은 묘사가 과장이 아니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어느새 제주도 길모퉁이에 서 있는 봄을 맞는 '제주 뮤직 아일 페스티벌' 실내악은 기업들의 따뜻한 손길 속에 그윽한 화음을 마음껏 흩뿌리고 있었다.
bjyang@sejo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