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데스크] 탁신과 이해찬

지도자의 몰락은 순간이다. 퇴진 압력을 받고 있는 태국의 탁신 치나왓 총리도 한때는 인기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통신재벌 친 코퍼레이션 총수에서 2001년 정치인으로 변신한 그는 'CEO (최고경영자)형 총리'라는 닉네임에 걸맞게 국가를 획기적으로 개조했다는 평가를 들었다. 마약과의 전쟁에서 딜러들이 2000명 넘게 죽었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공무원은 과감하게 잘라버렸다. 취임 당시 2% 안팎에 머물던 경제성장률은 그의 정치적 안정노력에 힘입어 2~3년 만에 6% 전후로 껑충 뛰었다. 탁신은 쓰나미(지진 해일)가 덮쳤을때 곧바로 현장으로 달려갔다. 늑장 대응하던 공무원을 꾸짖던 그의 모습이 TV로 방영되자 '역시 CEO 출신답다'는 찬사가 쏟아졌다. 작년 2월 태국 총리로선 처음으로 재선에 성공하는 기록을 세웠지만 몰락에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화근은 공사(公私)를 구분하지 않은데 있었다. 총리 취임 후 법에 규정한 대로 친 코퍼레이션 지분을 가족들에게 다 넘겼지만 그 기업에 특혜를 주는 정책을 폈다. 친 코퍼레이션에만 유리하게 통신회사 지분제한 규정을 만들었다. 친 코퍼레이션이 50%의 지분을 갖고 있는 타이 에어 아시아 항공사엔 공항세를 깎아줬다. 언론이 들고 일어나자 소송으로 맞섰다. 지난해 성장률도 4%대로 떨어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국민들은 참아주는 듯했다. 탁신 일가가 친 코퍼레이션을 팔아 챙긴 1조8500억원의 이익에 대해 조세피난처를 이용,한푼의 세금도 내지 않은것으로 드러나자 국민들의 분노는 폭발했다. 신뢰도는 땅에 떨어졌다. 일본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은 미뤄졌다. 미국과의 협상도 중단됐다. 3ㆍ1절 골프 파동으로 낙마 위기에 몰린 이해찬 총리도 탁신과 같은 신세다. 이 총리의 권한도 막강했다. 경제 부총리가 있으나 마나한 자리로 떨어진 것도 이 총리의 권한이 워낙 셌기 때문이다. 실세 총리가 경제를 직접 챙기니 경제 부총리가 설 땅이 없어진 것은 당연한 일.골프 파동 당사자인 이기우 교육부 차관도 사실상 이 총리가 임명했다. 높아진 위세에 취했는지 그도 탁신처럼 공인의 자세를 잊어버렸다. 3ㆍ1절에도 골프를 칠 수 있다. 고위 공직자라고 묵념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철도파업 중이라고 총리가 현장을 진두지휘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주가조작 등 온갖 의혹에 휘말려 있는 사람들과 40만원을 걸고 잘 치는 사람이 따먹는 접대 골프를 한 것은 개인 이해찬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공직자 윤리규정을 몸소 실천해야 할 총리로선 삼가야 할 놀이였다. 하루가 멀다하고 거짓말로 드러나는 동반 골퍼들의 변명도 공인 이해찬의 설 땅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탁신 총리는 그나마 국민의 3분의 2가 되는 농민과 영세상인들이 집권 1기의 경제 실적에 자위하고 있어 자리를 지켜낼 가능성이 있다. 어쩌면 3분의 2가 넘는 국민들의 마음까지 잃었을지 모를 이 총리는 누가 구해줄까. 고광철 국제부장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