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FTA의 본질은 '경쟁'

김중수 2300여년 전 춘추전국시대 일곱 나라의 운명을 결정한 정책이 합종책과 연횡책이다. 진나라가 위협세력으로 등장하자 나머지 여섯 나라가 힘을 합쳐 진나라에 대항함으로써 각 나라의 안전을 도모한 게 합종책이다. 이에 진나라는 각 나라와 양자협력관계를 맺음으로써 합종책을 무력화시켰는데 이것이 연횡책이다. 직접적 비유는 적절치 않지만,다자협력체제와 양자협력체제는 현재도 공존하고 있다.우리는 다자간 체제를 지지해왔다. 양자협력체제에선 경제적 약소국이 강대국에 비해 불리한 협상결과를 갖게 되기 때문에 다자간 체제가 약소국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데 유리하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여럿이 행동할 때 구성원들의 이해관계가 상충될 수 있어 결속력이 약해지고 합의하기 어려운 다자체제의 단점이 부각되게 됐다. 따라서 양자협력체제가 실질적으로 경제발전에 기여하게 된다는 인식도 확산돼 왔다.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한다는 정부의 결정은 그 어떤 정책보다도 우리나라의 앞날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고심에 찬 결정이었다고 판단되며 반드시 성공해야만 할 정책이다. 다자간 체제를 지지하면서 실익도 도모하겠다는 노력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농산물협상의 관건을 극복하고 WTO에 가입했던 것,경제자유화와 시장개방을 추진하면서 선진국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 된 것과 함께 경제체질을 선진화시킨 업적으로 인정받게 될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문제는 앞으로의 협상과정을 순조롭게 추진할 능력을 갖추었는지의 여부다. 우선 명분보다는 실익을 택한 우리의 기조가 유지될 수 있을지도 우려된다. 어떠한 국제협상도 대외적 전략 못지않게 대내적 이해집단간의 협상이 중요하다. 협상에 따른 이익과 손실을 각 계층이 공평 분담할 방안을 마련할 수 있는 정치적 리더십이 요구된다. 물론 상대를 파악하는 정보력에서도 밀리지 않아야 한다. 우리 사회에 속칭 미국파가 사회 각 부문에 포진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미국을 잘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도 걱정이다. 미국은 다양한 민족이 모여 건국한 나라이기 때문에 그 나라를 지탱하는 것이 법과 질서에 대한 존중에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한편 사회의 화합을 위해 약자에 대한 보호와 지원도 제도적으로 잘 구비돼 있다. 그러나 협상에서 우리가 작은 나라라고 이러한 시혜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한마디로 FTA는 경쟁국이 되겠다는 협정이다.경쟁이 생활에 체화돼 있다는 게 미국사회를 최강 경제대국으로 만든 결정요인이다. 온정주의는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 법과 규칙의 준수,합리주의는 미국식 협상의 가장 큰 특징이다. 서로 다른 법체계를 가진 나라들의 협상에서는 결국 그 법체계가 국제규범에 상응하는가가 판단의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글로벌경제에서 경쟁해야 하는 여건에선 당연하다. 상대적으로 우리의 부담이 예견되는 부분이다. 한편 우리는 국민정서라는,법보다 상위 개념의 관행이 현실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나라다. 특히 국민들의 떼 짓는 행동이 합리적 의사결정의 방해요인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하며,이러한 행동이 정치적 동기에서 유발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한ㆍ미 FTA의 손익계산서는 두 나라 사이에 누가 더 많은 이익을 얻었는가에만 달려있지는 않다. 우리가 전 세계를 상대로 경제활동을 하는데 있어 도움이 되는가가 척도가 돼야 한다. 지난번 세계야구대회(WBC)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미국의 입김에 의한 일정 선정으로 우리는 일본에 두 번을 이기고도 결승에 진출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대회는 결과적으로 우리의 국위를 전 세계에 선양하는 기회로 작용했다. 그 대회의 규칙을 바꿀 힘이 없다고 참가하지 않는 것보다는 참가한 게 현명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명분보다는 실익이 우선인 것이다. 한ㆍ미 FTA 협상 담당자들이 마음에 새겨두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