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한진重 "이제 사업도 남남"


한진해운은 최근 43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컨테이너선 4척을 삼성중공업에 발주했다.


작년 11월 같은 크기의 선박 5척을 역시 삼성중공업에 발주했을 때 옵션으로 계약을 약속한 물량이다.
이에 앞서 2004년과 2005년엔 6500TEU급 선박 8척을 현대중공업에 맡겨 인도를 기다리고 있다.


이로써 2000년대 들어 한진해운이 발주한 선박 17척(가격 11억4310만달러)은 모두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에 돌아갔다.


이 과정에서 한진해운의 형제 기업인 한진중공업은 단 한 척도 수주하지 못했다.
1조원어치 이상의 일감이 경쟁업체에 돌아가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업계에선 한진해운이 향후 발주할 1만TEU급 초대형 선박도 한진중공업이 수주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故 조중훈 회장 타계후 '제갈길'
2000년대 들어 한진중공업과 한진해운 간 거래 관계는 사실상 끝났다.


특히 고(故) 조중훈 회장이 2002년 11월 타계하고 2남인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과 3남인 조수호 한진해운 회장이 실질적으로 각각의 회사를 경영한 뒤엔 더욱 그렇다.


두 회사 간 협력관계가 끈끈했던 1990년대와는 너무 대조적이다.
한진중공업은 고 조중훈 회장이 89년 5월 법정관리 중이던 대한조선공사를 인수한 뒤 이듬해 사명을 바꾼 회사다.


한진해운은 90년부터 96년까지 4000∼5300TEU급 컨테이너선 20척을 모두 한진중공업에 몰아줬고,한진중공업은 이를 바탕으로 96년 법정관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후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한진해운은 8년간 신조선 발주를 한 척도 하지 못했다.


한진해운은 외환위기 여파가 끝난 2004년부터 신조선 발주에 나섰지만 파트너는 삼성중공업과 현대중공업으로 바뀌었다.


◆"협력할 이유가 없다"


한진중공업과 한진해운이 완전히 갈라선 데 대한 두 회사의 설명에는 차이가 있다.


한진해운측은 "한진중공업의 도크가 부족해 발주한다 하더라도 이를 감당할 능력이 되지 않는 것으로 안다"면서 "당장 발주해서 적기에 배를 인도받아야 하는 문제도 있고 가격도 상대적으로 싸지 않다"고 설명한다.


이에 대해 한진중공업은 "친밀한 관계도 아닌데 굳이 수주하려고 노력해야 할 필요가 있겠느냐"면서 "3년치 일감을 확보하고 있어 수주에 나설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통상 '갑'과 '을'의 관계인 해운사와 조선사 간 관계가 형제 기업인 두 회사 사이에서 잘 통하지 않는 점도 실무선에서 거래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해운·조선업계에선 두 회사 간 결별을 한진그룹 2세 간 갈등에서 찾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현대상선과 현대중공업이 계열분리 이후에도 지속적인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과 대조를 이룬다"며 "형제 기업 간 계열분리가 이뤄졌다 해도 이처럼 거래 관계를 '무 자르듯' 정리한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현대상선은 2003년 10월 이후 발주한 4700∼8600TEU 컨테이너선 20척과 초대형 유조선 2척을 모두 현대중공업과 현대삼호중공업에 발주했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