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車그룹 비자금 수사 확대] 김재록 "해외거래처 바꾸라" 요구하기도

'김재록 연출,김재록 주연?' 현대·기아자동차그룹 비자금을 수사 중인 검찰의 칼날이 당초 출발점인 '거물 금융브로커' 김재록씨(인베스투스글로벌 고문·구속)에게 정조준되고 있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당초 현대차측의 로비 창구쯤으로만 여겨졌던 김씨의 비중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채동욱 대검 수사기획관은 6일 "김씨를 조사 중인 수사팀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고 말했다. 글로비스 금고에서 확보했다는 비자금 입ㆍ출금 내역이 담긴 장부가 검찰이 밝힌 첫번째 수확물이다. 채 수사기획관은 "입·출금 장부를 확보했다"며 용처를 규명할 핵심 단서를 발견했음을 공개했다. ◆검찰,비자금 흐름 확인한 듯 채 수사기획관은 이어 "비자금 조성자와 관리자,사용자 등 3자의 역할이 시스템적으로 분화돼 있더라"며 그간의 수사 진행 상황을 비교적 상세히 밝혔다. 검찰은 현대차그룹 비자금 조성 경위는 물론 비자금의 흐름에 대해서도 윤곽을 파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또 현대차 본사에서도 비자금 입ㆍ출금 내역이 담긴 장부 등을 압수해 글로비스와 별도로 본사 차원에서 비자금을 조성해 관리했는지를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그러나 현대차 비자금 수사 배경과 관련,"비자금의 용처를 꼭 밝혀야겠다는 목적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이 사건 수사를 정·관계 로비쪽에 초점을 맞추지 말아달라고 주문했다. 다만 채 수사기획관은 "회사를 이용한 부(富)의 축적과 이전도 적법하게 이뤄져야 우리나라가 투명해진다. 우리나라의 현실을 점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대차그룹의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의혹을 살펴볼 수도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발언이다. 검찰은 조만간 정몽구 회장 부자에 대한 소환 조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이 조성한 비자금의 사용처를 최종 확인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이 같은 와중에 검찰은 정 회장에게 묘한 신호를 보냈다. 채 수사기획관은 "정 회장은 확실한 혐의가 포착돼 있었던 김우중 전 대우 회장과는 다르다"며 "검찰에서 조사받아본 현대차 관계자들은 수사의 진행 상황을 파악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종합하면 이번 수사를 마무리짓기 위해 정 회장의 조기 귀국이 필수적이지만 수사 결과가 결코 정 회장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몸통은 김재록씨? 채 수사기획관은 이날 "(현대차의 옛 기아계열사 인수·합병과 관련)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들과 김씨가 연관돼있어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의 설명처럼 김씨가 현대차 비자금 조성 단계부터 개입한 정황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그는 지난달 22일 대출 알선 등의 혐의로 검찰에 체포되기 직전까지 글로비스 사무실을 방문,사업의 방향 등을 놓고 직원들과 수시로 회의를 개최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글로비스 관계자는 "김씨가 페이퍼컴퍼니인 해외 거래처를 자신이 지정하는 곳으로 바꾸라고 지시한 적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또 국내에 자신이 대표인 회사를 차려 놓고 글로비스와의 거래를 주선했다는 진술도 나왔다. 옛 기아차 계열사를 현대차그룹으로 재편입하는 과정에도 김씨가 개입한 흔적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현대차그룹은 구조조정 차원에서 매각한 부품계열사 본텍(옛 기아전자) 위아(옛 기아중공업) 카스코(옛 기아정기) 등의 회사채를 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CRC)를 통해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로부터 사들였다. 캠코는 매각업무 전 과정을 김씨가 대표로 있던 컨설팅회사 아더앤더슨에 위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주변정황을 따져보면 옛 기아차계열사들이 현대차그룹에 모두 재편입된 데는 김씨가 모종의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함께 김씨가 현대차그룹의 향후 청사진을 담은 내부보고서까지 작성했다는 얘기도 있어 김씨가 이번 사건을 '총괄 지휘'했다는 분석이 점차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김병일·김현예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