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속으로] 에버랜드‥박노빈 사장의 '자율과 창의론'

"국민들의 사랑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박노빈 삼성에버랜드 사장(60)은 에버랜드 개장 30주년을 맞는 소감을 이렇게 간략하게 밝혔다.회사가 국민적 서비스 기업으로서 성장한 데는 고객(국민)들의 애정과 신뢰가 절대적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박 사장이 미래의 비전으로 설정해 놓고 있는 것도 '국민의 삶에 즐거움과 활력을 주는 생활에너지 회사'로서의 자리매김이다.

그의 좌우명 역시 '베풀고 사랑하자'다.자녀들에게 강조하는 것도 "자신을 앞세우지 말고 항상 남을 배려하라"는 것이다.

삼성식 표현대로라면 '업(業)의 특성'과 개인적 생활 신조가 일치하는 셈이다.

제일제당과 삼성중공업을 거치며 관리통으로 성장한 박 사장이 삼성에버랜드라는 기업에 쉽게 적응한 것은 아니다."1993년 11월에 이사 신분으로 에버랜드에 처음 근무를 하게 됐는데 분위기가 참 낯설더군요.

레저기업 특유의 자유롭고 격의 없는 분위기가 근엄하고 딱딱한 조직 문화에 익숙한 저에게는 오히려 스트레스로 다가왔어요.

적응하느라고 한 2년 남짓 애를 먹었습니다."하지만 요즘 박 사장이 부하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덕목은 '자율'과 '창의'다.

임직원들이 마음껏 끼를 발산하며 감성적 즐거움을 가질 수 있어야 업무 효율이 극대화된다는 생각에서다.

박 사장은 삼성그룹 공채 14기(1974년 입사)다.

이수창 생명 사장,김징완 중공업 사장,유석렬 카드 사장,이상대 물산 건설부문 사장,이우휘 에스원 사장,한용외 문화재단 사장 등이 포진한 14기는 현재 삼성그룹을 이끌고 있는 중심축이다.

박 사장은 보성고를 나와 서울대 수학과를 졸업했다.

수학과를 나와 왜 기업에 입사했느냐는 질문을 했더니 젊은 시절 그의 성향을 엿볼 수 있는 대답이 나왔다.

"대학입시를 앞두고 서울대 화공과를 가고 싶다고 했더니 담임 선생님께서 '너는 수학을 못하니 안된다'고 하셨어요.

은근히 화가 나더라고요.

그래서 마음에도 없는 수학과를 덜컥 지원했습니다."

하지만 오기를 부린 결과는 그다지 좋지 못했다.

적성에 맞지 않는 학과에서 겉돌다보니 겨우 졸업을 하게 됐다는 것.박 사장은 결국 경영학과 대학원을 진학하게 됐고 그것이 삼성 입사로 연결됐다는 것이다.

박 사장은 삼성과 인연을 맺은 것을 "인생 최대의 행운"이라고 말했다.

"선배들의 엄한 교육과 잘 짜여진 훈련 시스템이 오늘날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만약 다른 기업에 입사했더라면 사장까지 오르지 못했을 겁니다."

그래서 요즘 CEO로서 가장 신경을 쓰고 있는 분야도 인재육성이다.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하게 도전하는 인재를 키우는 일이야말로 '기업은 곧 사람'이라는 선대 이병철 회장의 유훈과 지구촌 어디서라도 필요한 사람을 뽑아 쓰는 이건희 회장의 철학을 실천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