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봄꽃의 설렘
입력
수정
권지예 < 소설가 >
우리 집에는 네 명의 식구가 살고 있다.우리 집에는 컴퓨터가 4대 있다.
며칠 전 아들애가 생일 선물로 요구한 컴퓨터를 아들 방에 설치했으므로 1인 1PC 가정이 됐다.
게다가 작년부터는 1인 1휴대폰이다.네 식구의 손에는 늘 각자의 휴대폰이 쥐어져 있다.
초등학생 아들,고등학생 딸,글을 써서 먹고사는 부부는 각자의 방에서 컴퓨터 모니터를 앞에 두고 씨름하고 있다. 간혹 글을 쓰다 물이라도 마시려고 밖에 나오면 독립된 각 방이 내는 소음으로 집안이 술렁거린다.학원의 인터넷강좌를 들으며 휴대폰으로 대화에 빠진 딸아이,'써든 어택' 게임을 하느라 총소리가 끊이질 않는 아들의 방.나는 거실에서 잠시 길을 잃는다. 마치 호텔 복도에 서서 다른 객실로부터 들려오는 낯선 타인들이 내는 소리를 듣고 있는 것 같다.
부엌으로 가서 물을 마시며 슬쩍 부엌 창밖으로 눈길을 준다. 목련은 이미 지고 있고 대신 동백꽃이 벌어지려 한다. 창밖은 봄이 절정이다.모든 절정은 너무도 짧아서 안타깝다. 아아! 참 아깝다. 나는 물 한 모금 마시면서 쯧쯧,혀를 찬다.
거실에선 TV가 저 혼자 놀고 있다.
우리 집에는 2대의 TV가 있다.프로게이머들의 인터넷게임 중계방송을 보거나 만화채널을 독점하는 아들이 켜놓고 시청하느라 수시로 들락거린다.
간혹 딸아이가 드라마를 보겠다며 채널다툼이 있을 때면 패자는 안방 TV를 점령한다.
나는 TV를 거의 보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언제부턴가 아예 보지 않는다.
물론 TV를 보지 않게 된 이유는 다른데 있기도 하다.
어쩌다 공휴일이면 오랜만에 식구들이 일렬횡대로 앉아 오락 프로그램을 보며 간혹 웃는 모습을 보게 된다.
요즘 오락프로에 나오는 고만고만한 연예인들은 가수인지 탤런트인지 활동 장르가 분명하지 않다. 내가 보기엔 노상 그 밥에 그 나물이며 비슷한 타령이다.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몇 가지 패턴 속에서 돌고 돈다.
출생의 비밀은 기본 플롯이다.
여기에 재벌 2세가 나오고, 가난하지만 눈에 번쩍 띄는 미모의 여자가 나오고, 돈은 많지만 성질 못된 또 다른 여자가 나와 삼각관계를 이루고 결혼의 고지를 향해 아옹다옹,티격태격한다.
한국 드라마에는 여주인공들이 잘 때도 세수를 안 하고,왜 그렇게 밥 먹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지 모르겠다는 외국인 친구의 말이 아니더라도 주인공들의 비극적 운명에는 암과 교통사고가 꼭 끼어든다.
대개 주인공은 교통사고가 나면 디스크가 아니라 기억상실증에 걸린다.
게다가 화가 나면 꼭 뺨을 때리고 이상하게 휴대폰은 어디서든 잘 터진다.
아이들도 이런 법칙을 알고 있으면서도 본다. 거봐, 내 그럴 줄 알았어.욕을 하면서도 끝까지 본다. 심각한 중독이다.
애들아, 거실 창밖을 좀 봐라.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구나! 속절없이 가는 봄이 안타까워 연신 감탄사를 터뜨려보지만,화사한 봄꽃은 아이들의 시선을 붙잡지 못한다. 아이들은 이제 서로를 마주보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의 소통 도구로 발명된 휴대폰,TV,인터넷 중독에 빠져 더 깊은 고독 속으로 미끄러진다.
그것들이 주는 일방적이고 차가운 정보를 받아먹으며 상상력의 세포를 죽이고 있지나 않은지 안타깝다.
추운 겨울날 식구들이 한 이불 속에 다리를 묻고 마주보며 '이 거리 저 거리 각거리'를 하거나 손을 호호 불며 '쎄쎄쎄'를 하며 놀던 그 따스한 옛날은 정말로 멀리 가버린 걸까? 어린 날,창경원 밤벚꽃 놀이를 목을 빼고 기다리던 그 설렘을 이 아이들은 이해하지 못하겠지.
그런저런 애틋한 이유로 여의도의 벚꽃이라도 아이들과 구경하려 했는데 지난 주말은 황사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이번 주말엔 일단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탈출해야겠다.
꽃그늘 아래 모여앉아 마주 보며 일년에 한 번이라도 '쎄쎄쎄'를 하고 싶다.머릿속을 환기시키고 싶다. 이번 주말엔 일기예보를 확인해봐야겠다.
제발 먼지바람이 불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집에는 네 명의 식구가 살고 있다.우리 집에는 컴퓨터가 4대 있다.
며칠 전 아들애가 생일 선물로 요구한 컴퓨터를 아들 방에 설치했으므로 1인 1PC 가정이 됐다.
게다가 작년부터는 1인 1휴대폰이다.네 식구의 손에는 늘 각자의 휴대폰이 쥐어져 있다.
초등학생 아들,고등학생 딸,글을 써서 먹고사는 부부는 각자의 방에서 컴퓨터 모니터를 앞에 두고 씨름하고 있다. 간혹 글을 쓰다 물이라도 마시려고 밖에 나오면 독립된 각 방이 내는 소음으로 집안이 술렁거린다.학원의 인터넷강좌를 들으며 휴대폰으로 대화에 빠진 딸아이,'써든 어택' 게임을 하느라 총소리가 끊이질 않는 아들의 방.나는 거실에서 잠시 길을 잃는다. 마치 호텔 복도에 서서 다른 객실로부터 들려오는 낯선 타인들이 내는 소리를 듣고 있는 것 같다.
부엌으로 가서 물을 마시며 슬쩍 부엌 창밖으로 눈길을 준다. 목련은 이미 지고 있고 대신 동백꽃이 벌어지려 한다. 창밖은 봄이 절정이다.모든 절정은 너무도 짧아서 안타깝다. 아아! 참 아깝다. 나는 물 한 모금 마시면서 쯧쯧,혀를 찬다.
거실에선 TV가 저 혼자 놀고 있다.
우리 집에는 2대의 TV가 있다.프로게이머들의 인터넷게임 중계방송을 보거나 만화채널을 독점하는 아들이 켜놓고 시청하느라 수시로 들락거린다.
간혹 딸아이가 드라마를 보겠다며 채널다툼이 있을 때면 패자는 안방 TV를 점령한다.
나는 TV를 거의 보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언제부턴가 아예 보지 않는다.
물론 TV를 보지 않게 된 이유는 다른데 있기도 하다.
어쩌다 공휴일이면 오랜만에 식구들이 일렬횡대로 앉아 오락 프로그램을 보며 간혹 웃는 모습을 보게 된다.
요즘 오락프로에 나오는 고만고만한 연예인들은 가수인지 탤런트인지 활동 장르가 분명하지 않다. 내가 보기엔 노상 그 밥에 그 나물이며 비슷한 타령이다.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몇 가지 패턴 속에서 돌고 돈다.
출생의 비밀은 기본 플롯이다.
여기에 재벌 2세가 나오고, 가난하지만 눈에 번쩍 띄는 미모의 여자가 나오고, 돈은 많지만 성질 못된 또 다른 여자가 나와 삼각관계를 이루고 결혼의 고지를 향해 아옹다옹,티격태격한다.
한국 드라마에는 여주인공들이 잘 때도 세수를 안 하고,왜 그렇게 밥 먹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지 모르겠다는 외국인 친구의 말이 아니더라도 주인공들의 비극적 운명에는 암과 교통사고가 꼭 끼어든다.
대개 주인공은 교통사고가 나면 디스크가 아니라 기억상실증에 걸린다.
게다가 화가 나면 꼭 뺨을 때리고 이상하게 휴대폰은 어디서든 잘 터진다.
아이들도 이런 법칙을 알고 있으면서도 본다. 거봐, 내 그럴 줄 알았어.욕을 하면서도 끝까지 본다. 심각한 중독이다.
애들아, 거실 창밖을 좀 봐라.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구나! 속절없이 가는 봄이 안타까워 연신 감탄사를 터뜨려보지만,화사한 봄꽃은 아이들의 시선을 붙잡지 못한다. 아이들은 이제 서로를 마주보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의 소통 도구로 발명된 휴대폰,TV,인터넷 중독에 빠져 더 깊은 고독 속으로 미끄러진다.
그것들이 주는 일방적이고 차가운 정보를 받아먹으며 상상력의 세포를 죽이고 있지나 않은지 안타깝다.
추운 겨울날 식구들이 한 이불 속에 다리를 묻고 마주보며 '이 거리 저 거리 각거리'를 하거나 손을 호호 불며 '쎄쎄쎄'를 하며 놀던 그 따스한 옛날은 정말로 멀리 가버린 걸까? 어린 날,창경원 밤벚꽃 놀이를 목을 빼고 기다리던 그 설렘을 이 아이들은 이해하지 못하겠지.
그런저런 애틋한 이유로 여의도의 벚꽃이라도 아이들과 구경하려 했는데 지난 주말은 황사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이번 주말엔 일단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탈출해야겠다.
꽃그늘 아래 모여앉아 마주 보며 일년에 한 번이라도 '쎄쎄쎄'를 하고 싶다.머릿속을 환기시키고 싶다. 이번 주말엔 일기예보를 확인해봐야겠다.
제발 먼지바람이 불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