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빗나간 韓·美 FTA 논쟁

경제예측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틀리는 경우가 더 많고 그래서 예측은 뭐하려고 하느냐는 말까지 나온다. 예측이 맞지 않는 것은 예측이 안고 있는 본질적인 한계도 있지만 그 이후에 전개되는 수많은 '작용'과 '반작용' 탓도 있다. 예컨대 비관적 시나리오가 종종 틀리는 것은 그게 현실화되지 않도록 정부가 정책적 노력을 기울였거나 경제주체들 또한 행동을 달리한 때문일 수 있다.

어쨌든 예측이 어렵다 보니 이런저런 가정(假定)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경제학을 가정의 학문이라고도 한다.한·미 FTA에 대한 찬반논쟁이 거세다. 논쟁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만 감정이나 정치이념이 앞서면서 엉뚱하게 흘러가고 있는 게 심상치 않다.

정부가 한·미 FTA를 갑자기 제기한 것으로 비치고 시한을 정해 서두르는 듯한 인상을 준 것은 잘못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FTA의 경제적 효과예측 자체를 조작이나 음모로 몰고 갈 이유가 될 수 있을까. 무엇보다 논쟁이 과학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가정은 살펴보지도 않은 채 결과만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부터 그렇다. 가정 자체에 대한 논란도 마찬가지다. 가정은 어디까지나 현실을 단순화시켜 계산가능한 결과를 얻기 위한 것이다. 만약 어떤 가정을 문제삼고자 할 때는 현실을 더 잘 반영하면서도 정량적인 결과를 얻어낼 수 있는 또 다른 가정을 제시할 수 있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그건 소모적 논쟁에 불과하다.낙관적 중립적 비관적 시나리오를 편리한 대로 골라 논란을 벌이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시나리오는 구체적 수치 그 자체를 보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방향성을 보려는 목적이 크다. 뿐만 아니라 가능한 한 비관적 시나리오 전개 가능성은 줄이고 낙관적 시나리오쪽으로 가겠다는 의도가 전제돼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혹자는 미국과 우리나라의 한·미 FTA효과 예측 결과가 서로 다르다는 점을 문제삼기도 한다. 하지만 FTA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한쪽 당사국에 미치는 효과에 대한 계산도 양쪽에서 얼마든지 다르게 나올 수 있다. 이 것은 정확성의 문제가 아니다. 각자 설정한 가정과 시나리오, 협상범위 등에서 차이가 있으면 그 결과 또한 다를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비과학적 논쟁은 이것 뿐만이 아니다. 미국과 멕시코 사례를 가지고 한·미 FTA효과를 예단하는 것도 그렇다. 멕시코가 미국과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 체결 이후 교역과 외국인 투자는 크게 늘어난 반면 일정기간 성장률이 둔화됐다고 하지만 우리나라가 멕시코와 과연 똑 같은 조건인지부터 살펴보는 게 순서다. 그리고 그에 앞서 멕시코가 NAFTA 이후 성장률이 떨어진 것이 FTA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따져봐야 한다.오히려 한·미 FTA효과 예측의 한계는 정작 다른 데 있다는 생각이다. 무엇보다 단기적·경제적 효과에 치우쳐 있다. 그 결과 개방과 경쟁 촉진으로 인한 효율성 증대, 제도 선진화 등과 같은 장기적인 효과들, 그리고 정치적·안보적 포석 등의 비경제적 측면(사실 이는 경제적 효과와 분리되기 어렵다)이 충분히 계량화되지 못하고 있다. 여타 FTA와 다른 한·미 FTA만의 고유한 효과가 제대로 부각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논설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