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가난한 집 제사‥백수경 <인제대·백병원 재단본부장>

백수경 < 인제대·백병원 재단본부장 skpaik@inje.ac.kr >

지난 3월1일 '양재천 너구리'로 시작한 한경에세이가 벌써 아홉 번째,마지막 글이 되었다.처음에는 산책 나가면 떠오르곤 하는 새로운 주제를 바로 글로 만들며 글쓰기 자체를 즐겼다.

그런데 많은 분이 "잘 읽었다,좋은 글 감사하다"며 전화와 메일로 피드백을 보내오자 오히려 이것이 부담이 되고 글밑천도 바닥이 드러나 4월 들어 상당히 힘들게 느껴졌던 것이 사실이다.

일전에 한경에세이를 썼던 필자 한 분이 "매주 글쓰기가 마치 '가난한 집 제사 돌아오듯' 어렵다"고 했던 말에 점점 공감이 갔다.내 형편이 '부잣집의 여유 있는 제삿날'에서 점차 '가난한 집의 힘겨운 제사'로 가세가 기울어 가는 기분이었다.

'가난한 집 제사'에는 두 가지 선택이 있다.

하나는 힘에 버거우면 과감히 그만두는 것이고,다른 하나는 그럴 처지가 못 되면 사고방식을 바꿔 거기서 즐거움을 찾는 길이다.얼마 전 상계백병원에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는 독서 토론모임이 생겼다.

첫 번째로 택한 책,'펄떡이는 물고기처럼'에서 이런 구절을 읽었다.

"비록 당신이 어떤 일을 하는가에 대해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하더라도 어떤 방법으로 그 일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항상 선택의 여지가 있다." 이 책을 놓고 이야기하는데 한 젊은 직원이 "마음먹기에 달렸으니 '직장 간다'를 '놀러간다'로 생각을 뒤집자"고 제의해 다들 재미있어 했다.집안이 가난하고 여유가 없어 평소에 아이들을 잘 먹이지도 못했을 테니 제삿날은 온 가족이 오랜만에 포식하는 날일 것이다.

모처럼 잘 먹었으니 아랫목에 둘러앉아 낡은 이불 속에 무릎을 맞대고 이야기꽃이라도 피운다면 부잣집 제사보다 훨씬 보람이 크지 않을까?

논술교실에서 '글쓰기'가 아니라 '생각쓰기'라는 말을 들었는데 머릿속 여기저기 널려 있던 내 생각들을 잘 다듬고 정리해 멋지고 예쁜 글로 다시 태어나게 하자.나의 느낌과 마음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독자들이 있으니 감사하고 행복하다.

'가난한 집의 신나는 제사'가 될 수 있도록 격려해 주신 모든 분과 좋은 기회를 마련해 준 한국경제신문에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