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환율 940원선 붕괴] 기업들 적자결산.대규모 구조조정 우려

산업계에 비상 벨이 울리고 있다.

국내 대부분의 기업들이 올해 기준 환율로 정했던 950원 선이 지난 19일 허망하게 무너진 데 이어 24일에는 940원 선까지 붕괴됐기 때문이다.그동안 소폭의 적자를 감수하고서도 수출에 나섰던 일부 기업들은 수출 중단을 검토해야 하는 한계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으며 연간 2∼3%의 영업이익률을 유지하며 버텨 온 일부 대기업들도 올해 적자 결산에 이은 대규모 구조조정을 각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승철 조사본부장은 "이대로 가면 해외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는 한계 기업들이 속출,무더기 도산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우리나라가 과연 외환위기 이전의 환율 수준으로 되돌아가도 괜찮은 것인지 외환당국은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중기,연간 이익을 석 달 만에 날려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조차 최근 가파른 환율 하락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의 평균 환율이 1143원을 찍었던 2004년 그룹 전체로 사상 최대인 19조원의 경상이익을 거둬들였던 삼성은 올해 경상이익 10조원 선이 깨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휩싸여 있다.

실제 그룹 이익의 65∼70%를 거둬들이는 삼성전자의 1분기 영업이익은 1조6000억원대에 그쳤다.전문가들은 환율 하락폭도 문제이지만 가파른 속도가 더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대응 전략을 준비할 여유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1분기 달러당 원화의 평균 환율은 976원으로 이미 지난해 전체 평균(1024원)에 비해 4.7% 떨어졌고 지난해 4분기 평균(1036원)보다는 5.8% 하락했다.2004년 국내 전체 중소기업의 영업이익률이 4.1%에 불과했던 점을 감안하면 거의 살인적인 낙폭이라는 지적이다.

LG전자의 권영수 재경담당 사장은 "환율이 가파르게 하락하면서 수출 채산성이 크게 악화되고 있다"며 "환율 외에 유가와 세계 IT(정보기술) 경기의 움직임 등도 변수로 등장하고 있어 올해 사업계획 전반을 재점검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LG필립스LCD도 지난 1분기 매출이 전분기에 비해 16.6%나 감소하면서 2004년 3분기 이후 처음으로 성장세가 꺾였다.


○대규모 구조조정 사태 오나


올해 사업계획상 기준 환율을 950원으로 책정한 현대자동차 그룹은 이미 일부 해외지역의 판매 목표를 줄인 상태이지만 환율이 달러당 930원 선에서 일정 기간 지속될 경우 올해 경영계획의 대폭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현대차는 수출 단가 인상으로 어느 정도 버텨 보겠다는 계산이지만 현재로서는 이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오는 7월부터 자동차가격 인상을 통해 일부 손실을 만회할 계획이지만 환율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별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과거 환율 하락기에 일정 부분 반사 이익을 누렸던 SK㈜의 상황도 달라졌다.

지난 몇 년간 수출 사업을 확대하면서 외화 부채는 17억달러로 줄어든 데 반해 수출은 매출의 절반인 10조원에 달하는 구조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4대 그룹의 형편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해외 시장에서 나름대로 탄탄한 브랜드 인지도와 원가 경쟁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기업 중에서도 경영목표 미달은 물론 생존까지 걱정해야 하는 기업들이 적지 않다는 데 있다.자산 총액 3조∼4조원대의 한 그룹 관계자는 "지난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대규모 구조조정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며 "환율이 950원 선 아래에서 계속 움직일 경우 한계 사업부들을 정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