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엠파이어 스테이트

대공황이 들이닥친 1929년의 뉴욕은 절망만이 가득했다.

주식이 휴지조각이 되면서 기업들은 문을 닫고 은행들은 파산했다.일거리를 찾지 못한 실업자들이 거리에 넘쳐나는 상황에서 J J 라스코라는 실업가가 맨해튼에 102층짜리 건물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제 정신이 아니다"는 조롱속에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채 2년도 안 되어 완공됐다.

현대의 바벨탑이라 불린 이 세계 최고층 건물은 암담한 현실을 깨는 한 줄기 희망의 상징으로 뉴욕커들에게 다가왔다.그러나 대공황의 와중에서 건물은 텅텅 비었다.

'제국'이라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한 동안 '빈(empty)빌딩'이라는 오명을 쓰고 남아 있어야만 했다.

지난 1일로 75년째 생일을 맞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여전히 뉴욕의 랜드마크이며 대중문화의 메카로 자리매김되고 있다.영화에서 킹콩이 여자를 데리고 오르는 감동적인 장면이나,'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의 야경도 바로 이곳 마천루에서 촬영된 것이다.

관광객 수만도 연간 350만명이 넘는다.

꺼질 줄 모르는 인기를 이어 온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명성과는 달리 공실률이 20%에 육박하고 있다는 소식이다.임대료도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고 한다.

테러공격으로 세계무역센터(WTC)가 붕괴된 이후,이 건물이 테러범들의 다음 목표가 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아서다.

빈 사무실의 주범이 공황 대신 테러로 바뀐 꼴이다.

사실 이 빌딩은 비행기와의 충돌경험이 있다.

1945년 미군 폭격기가 안개속에서 항로를 잃고 헤매다가 이 빌딩과 부딪친 것이다.

비행기가 박살나면서 많은 사상자를 냈으나 빌딩은 멀쩡해서 그 견고성을 놓고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제 각국은 국력의 과시용으로 또는 관광객 유치를 노려 더 높은 빌딩을 경쟁적으로 짓고 있다.번영과 비전의 상징이 되어야 할 빌딩들이 자칫 불순분자들의 엉뚱한 목표가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