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동호회도 진화한다‥"동호회 좋다" 소문나면 집값도 올라

지난달 초 경기도 용인 상현자이 아파트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신부 송지영씨(29·가명)는 신혼집을 어떻게 꾸며야 할지 고심하던 중에 뜻밖의 원군을 만나 문제를 거뜬히 해결했다.

단지 내 입주민 인테리어 동호회인 '보니따까사'(예쁜 집이란 뜻의 스페인어) 회원 30여명이 자신의 일처럼 나서서 인테리어 업체 선정부터 가구와 벽지 선택,소품 배치까지 세세하게 도움의 손길을 보내왔기 때문이다.송씨는 이 일을 계기로 회원들과 든든한 이웃사촌이 돼 아파트 생활이 한층 즐거워졌다.

아파트 주거문화가 달라지고 있다.

입주민들의 동호회 활동이 활성화하면서 아파트 문화가 나만의 여가만 생각하던 '나홀로 웰빙'에서 '커뮤니티 문화공동체'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4일 업계에 따르면 GS건설이 지은 전국 33개 아파트 단지에는 '보니따까사'와 같은 입주민 동호회가 122개에 달한다.

디지털 사진,골프,애견사랑 동호회 등 단순 취미활동에서 영어클럽과 독서토론회 등까지 다양하다.

중견 건설업체인 동일하이빌이 충남 천안에 건설한 '불당 동일하이빌' 같은 단지는 동호회가 15개나 된다.불사조(불당동의 사물놀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란 뜻),팔괘장(중국무술 수련회),부시시(새벽 헬스모임),통기타 음악동아리 등이 대표적이다.

일부 단지는 입주민들끼리 주식 등의 투자클럽을 만들어 서로 정보를 공유하는 실전 투자를 통해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들 동호회는 입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해 운영하는 것이 특징이다.일각에서는 삭막한 디지털 시대에서 과거의 '아날로그형' 인간관계를 그리워하는 현대인의 삶의 질 향상 요구가 각종 동호회 결성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박지혜 GS건설 마케팅팀 과장은 "바쁘게 돌아가는 생활에서 잠시 한발짝 물러서 있고 싶은 여유를 동호회가 채워주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아파트 동호회는 아파트 값을 끌어올리는 견인차 역할도 한다.

'동호회가 좋다'는 입소문이 퍼지는 단지에 실수요자들이 우선 몰리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천안 '불당 동일하이빌'은 2002년 동시분양 당시 분양가격이 평당 450만원으로 가장 낮았지만 입주민 동호회 활동이 활발하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현재 시세는 평당 1000만원으로 주변 단지보다 전체 매매가가 최고 3000만원 높다.

이 단지 동호회들은 친선 모임 외에 매년 가을마다 열리는 전체 입주민들의 잔치인 '불당 축제'에 참가해 공연을 갖고 1년 동안 갈고 닦은 솜씨를 뽐내기도 한다.

통기타 음악동아리를 2년째 이끌고 있는 최갑식 회장은 "2주일에 한 번씩 모여 가끔 외부 공연도 갖는 우리 동호회 활동 소식이 알려지자 주변 아파트에서도 비슷한 동호회 결성에 나서고 있어 천안지역 아파트 문화를 바꾸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크다"고 말했다.

동호회의 입김도 세지고 있다.

입주가 한창 이뤄지고 있는 용인 동백지구에서는 지난 3월 입주 예정자들의 총 동호회인 '동백사랑' 소속 각 단지별 대표들이 용인시 관계자들과 함께 준공검사에까지 참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처럼 아파트 단지마다 입주자 동호회가 활성화하자 건설업체들 사이에서는 동호회를 직접 마케팅에 활용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최근 GS건설은 탤런트 이영애씨와 함께 '보니따까사' 회원들이 직접 출연하는 TV CF를 내보내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았다.동일하이빌도 '신정동 동일하이빌'의 재즈댄스 동호회 회원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광고를 제작,방영하고 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