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기사' 문용직 5단 "프로기사들 대국 기록도 당당한 콘텐츠 재산이죠"

"정보기술(IT) 산업이 발달할수록 정보에 무임승차하는 경향도 커지고 있습니다. 프로기사들의 기보 저작권 추진 움직임도 이런 우려에서 나온 것입니다."

프로기사이면서 정치학 박사,저술가,방송해설가 등으로 다양하게 활동 중인 문용직 5단(48)이 이번엔 한국기원의 기보 저작권 추진운동에 나섰다. 얼마 전 김동훈 교수(국민대 법대) 등 법률전문가와 기보 저작권 연구보고회를 갖는 등 프로기사의 권리확보를 위한 이론적 토대를 만드는 일로 바쁘다.문 5단은 1994년 서울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데 이어 '바둑의 발견''수법의 발견' 등 13권의 바둑관련 저서를 펴내는 등 바둑계에서 '학구파 기사'로 잘 알려져 있다.

문 5단이 기보의 저작권에 눈뜬 것은 1990년대 말 무렵이다. 과거 신문 등 오프라인을 통해 기보가 유통될 때만 해도 대국 당사자와 대회 주최기관,한국기원 간에 관례적으로 지켜오던 계약질서가 있었다는 것. 그러다 인터넷 온라인 매체가 급속히 확산되고 구체적인 권리질서가 정착되지 못한 상태에서 무단 도용하는 사례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그는 지적한다. A사가 주최하는 대회에서 만들어진 기보를 아무런 허락없이 특정 인터넷사이트가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사례는 이미 7~8년 전부터 제기된 문제였지만 바둑계의 인식부재로 부각되지 않았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연구보고회 이후 인터넷 사이트 3곳에서 한국기원의 저작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등 기보 저작권이 실현되기까지 여정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이에 대해 문 5단은 기보 저작권이 문화 콘텐츠의 고급화,활성화란 측면에서 장기적으로 다뤄져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싸게 얻는 콘텐츠는 결코 고급화될 수 없습니다. 쉽진 않겠지만 이번 작업은 그동안 연구하고 모아온 자료를 활용해 제 나름대로 한국바둑의 질적 향상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을 찾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바둑과 공부 양쪽으로 욕심을 내다보니 어느 하나도 제대로 성취하지 못한 것 같다는 문 5단은 20여년 전 목 부분에 큰 수술을 받은 뒤 '반상의 승부사'가 되기보다는 이론적 체계화 등 '바둑에 관한'(그는 이를 'about바둑'이라고 말한다) 자료축적에 힘쓰고 있다.

홍성호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