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정책 실험은 이제 그만

홍기택 <중앙대 교수·경제학홍기택>

여론조사기관에 따르면,5·31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한 가장 큰 원인은 정부·여당의 무능함이다.이에 따라 향후 경제정책방향에 관해 다양한 의견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여당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당장 부동산정책을 포함해 경제정책을 시장중심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다른 일각에서는 오히려 양극화 해소를 위해 정부가 더욱 적극적으로 개혁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정부는 부동산정책은 절대 수정할 수 없으며 다른 경제정책도 여건 변화에 따른 미세조정 정도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정부 주장처럼 급격한 정책방향의 수정은 시장의 혼란만 초래하고 정책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게 된다.

부동산시장에서와 같이 기대수익이 정부정책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그 동안 정부가 추진한 부동산관련 법안은 헌법보다 더욱 바꾸기 힘들다고까지 주장했다.그런데 정부에서 아무리 엄포를 놓아도 막상 상당수 시장 전문가의 의견은 다르다. 정부가 입안한 부동산세제를 장기적으로 유지하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과다한 양도세는 부동산 거래를 위축시키고,따라서 생산적인 경제활동에 제약을 가하게 된다.

그러므로 언젠가는 부동산세제의 대폭적인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이번 선거결과는 이러한 시장의 믿음을 더욱 공고히 했다.아무리 정부가 현행 부동산제도는 정권을 초월한다고 주장해도 시장에서는 더욱 얼마 안가 바뀔 정책으로 인식하게 됐다.

정부당국자의 말대로 경제는 심리다.

그런데 시장참여자의 심리가 변했다. 이는 경제정책환경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다. 부동산정책뿐만 아니라 세제개편 재벌정책 균형발전 등 모든 정부정책은 바뀐 환경에 맞게 조정돼야 한다.

기존의 정책을 고집하는 것은 정부가 시장과 자존심 싸움을 하는 것밖에 안 된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정책의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믿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현 정부 들어서 벌써 3년 반 가까이 지났으나,정부정책은 국민의 신뢰를 얻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현 정부는 지난 대선에서 임기 내 잠재성장률 7% 달성을 선거공약으로 내세웠다.

물론 잠재성장률 7% 달성을 액면 그대로 믿었던 경제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임기가 1년 반 정도 밖에 남아있지 않은 지금 잠재성장률은 4%대로 추정되고 있다.

정부는 올해 성장률이 5%를 상회해 현재의 잠재성장률 이상을 달성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5% 이상 성장을 한다고 해도 이는 과거 3년간 세계 평균성장률 수준에도 못 미친 저성장에 따른 기술적 반등일 뿐 잠재성장률 확충과는 거리가 멀다.

잠재성장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자본,노동 및 생산성 증대가 요구된다.

그러나 그동안 민간기업의 설비투자는 제자리 수준에 머물렀고 교육개혁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등 인적자원의 개선도 미미했다.

제도혁신을 통한 생산성 증대의 가시적 효과도 보이지 않는다.

남은 임기 동안 잠재성장률이 대폭 증대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올 들어 우리의 출산율은 1.08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대로 가다가는 생산가능인구가 10년 후부터는 감소하게 된다. 그 이후부터는 많은 자원을 고령자 부양에 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생산성 확충을 위한 여력이 현저히 줄어든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 없다. 정책실험을 위해 더이상 귀중한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다. 대통령 말대로 기업은 상품으로 고객에 서비스하고 정부는 정책으로 국민에게 서비스한다.

3년 반이란 기간에도 불구하고 국민이란 고객이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면 그 정책은 포기해야 한다. 그리고 반대편 사람들의 의견도 경청해 새로운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개혁과 혁신은 자신의 편견과 아집을 버리는데서 온다.

진정한 개혁주의자는 자신의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