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자원확보가 경쟁력] 고개든 자원민족주의...에너지소비국 '비상'

천연자원에 대한 국가 통제를 강화하는 자원민족주의가 전 세계적으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에너지를 무기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나라가 늘고 있는 것.특히 최근 좌파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는 중남미 지역이 이 같은 흐름의 중심에 서 있다.베네수엘라가 대표적이다.

중남미 좌파의 맹주를 꿈꾸는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지난 1월 외국기업들이 소유하고 있던 유전 32곳에 대해 국유화를 선언했다.

기존에 체결된 협정을 모두 무효화하고 국가가 최소 60% 이상의 지분을 갖는 새 투자 협정으로 전환했다.베네수엘라는 원유 생산량 기준으로 세계 9위,천연 가스 보유량 기준으로 남미 1위의 자원 대국이란 점에서 당시 세계 에너지 시장은 커다란 충격에 빠졌다.

남미 2위의 천연가스 매장량을 가진 볼리비아도 지난 5월 에너지 산업 국유화를 선언했다.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은 국영 에너지회사인 YPFB가 에너지 생산과 판매,가격 책정을 모두 결정하겠다며 이를 거부하는 외국기업은 6개월 안에 볼리비아를 떠나야 한다고 경고했다.볼리비아는 석유 외에 광물과 삼림 자원에 대해서도 국유화를 확대할 방침이다.

에콰도르 의회도 지난 4월 국제 원유 가격에 연동해 원유 판매 수익의 50%를 정부에 내야 한다는 에너지 개혁법안을 가결했다.

아르헨티나는 2004년 10월 새 국영 에너지회사(ENARSA)를 설립,가스·석유 탐사 및 정유 작업을 총괄토록 했다.오는 7월과 11월 각각 대선이 실시되는 멕시코와 니카라과에서도 좌파 후보가 당선될 경우 에너지에 대한 국가통제 수위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중남미 국가들의 이 같은 움직임은 1970년대 중동 산유국들의 자원민족주의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당시 중동 산유국들도 외국의 석유 메이저에 휘둘리던 석유 주권을 되찾아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는 유례없는 오일쇼크로 이어졌으며 이후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막강한 힘을 갖게 됐다.

그러나 오일쇼크 때는 중동 산유국들이 일종의 담합에 의해 가격과 생산량을 일방적으로 결정한 데 반해 현재 중남미의 자원국유화 바람은 에너지 소유권과 처분권을 확보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게 차이점이다.

이런 점에서 중남미 자원민족주의의 모델은 러시아라고 볼 수 있다.

전 세계 천연가스 매장량의 31%가량을 보유하고 있는 러시아는 지난 2000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취임 이후 에너지 기업을 국영화했고 이에 힘입어 냉전 시대에 맞먹는 국제적 위상을 회복했다.

문제는 이 같은 자원민족주의가 에너지 무기화와 직결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러시아 국영 에너지회사 가즈프롬의 알렉세이 밀러 회장은 최근 유럽에 대한 가스 공급을 중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핵무기 개발 의혹을 받고 있는 이란이 미국 등 서방국가의 군사 공격 가능성에 끄떡없이 버티는 것도 따지고보면 막대한 석유 자원 덕분이다.

자원민족주의가 확산되면서 주요 에너지 소비국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올초 국정연설에서 "석유 중독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대체 에너지 개발을 강조하고 나섰다.후진타오 중국 국가 주석은 급속한 경제 성장에 따른 에너지 수요를 뒷받침하기 위해 최근 아프리카 등을 돌며 자원 외교를 벌였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