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수 삼성 전략기획실장, 7년전 암 덩어리 지닌채 구조조정 완수

이학수 삼성 전략기획실장(부회장)이 1999년 신장암 발병 사실을 알고도 삼성자동차 처리 등을 위해 6개월이나 수술을 미뤘던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화제다.

이 실장은 특히 의료진의 조기수술 권유까지 뿌리치면서 경영현안 해결에 매달렸던 것으로 전해져 '직장보다는 개인의 웰빙'을 우선시하는 일부 젊은 세대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1999년은 삼성그룹이 창사 이래 최대의 시련을 맞이했던 시기.이 실장은 외환위기 이후 그룹의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하는 구조조정본부장을 맡고 있었다.

삼성전자만 해도 3만명에 가까운 임직원들이 회사를 떠날 정도로 강도높은 구조조정이 이어졌다.

당시 이 실장에게 가장 골치아픈 일은 의외로 부실이 심각했던 삼성자동차 처리문제.정부와 김우중 당시 대우 회장은 삼성차-대우전자 빅딜(대기업 간 사업체 교환) 카드를 꺼내들고 삼성을 강도 높게 압박했다.그 해 3월엔 이건희 회장과 김우중 회장 간 승지원 담판이 벌어지는 등 긴박한 상황이 이어졌다.

이 실장이 삼성의료원으로부터 신장암 진단을 받은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6월.의료원은 "수술 시기를 놓치면 나중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지만 이 실장은 병상에 눕지 않았다.

오히려 진단 결과를 외부에 함구하라고 지시했다.그해 7월 이 실장은 삼성차에 대한 법정관리를 전격 신청했다.

삼성과의 빅딜로 그룹의 위기를 타개하려던 김우중 회장의 기대가 무산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빅딜을 밀어붙였던 정부와 채권이 동결된 은행들은 즉각 반발했다.그룹 여신을 회수할 수도 있다는 경고성 발언들이 나왔다.

결국 삼성차 주식을 단 한 주도 갖고 있지 않던 이건희 회장이 채권단의 손실 보전을 위해 사재출연을 하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이 실장은 몸에 암덩어리를 지닌 채로 단 한시도 쉴 수가 없었다.

그 해 9월에는 더욱 좋지 않은 소식이 이 실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건희 회장이 폐암진단을 받은 것.삼성은 가장 어렵고 긴박한 시기에 그룹의 중추인 이건희 회장과 이학수 실장이 동시에 암에 걸리는 불운을 맞은 것이다.

이 실장은 이 회장이 치료를 위해 미국 MD앤더슨센터로 떠나고 삼성을 괴롭히던 현안들이 거의 마무리된 12월에 가서야 종양 제거수술을 받았다.

이 실장이 암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은 몇 달 전 정부 고위 관계자와 재계 구조조정본부장들과의 만남에서 처음으로 공개됐다.

당시 정부 고위 인사가 "구조조정본부가 권한만 누리고 책임은 지지 않는다"고 공격하자 이 실장이 "목숨을 걸고 일을 하는데 너무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것 아니냐"고 반박하면서 자신의 경우를 들어 설명했다는 것.

이 같은 사실이 최근 삼성 내부에 알려지자 삼성 관계자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한 관계자는 "이 실장이 이건희 회장과 같은 시기에 암을 앓았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홀로 참아낸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라며 "삼성이 2000년 이후 사상 최대의 실적기록을 경신하며 전성기를 맞이한 것은 암 덩어리를 안고서도 쉬지 않고 구조조정을 이끌었던 이 실장의 초인적 의지 등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