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함께 풀어갑시다] (4) 생각을 바꾸자 … 잘못된 교육 여전

출산·육아 친화적인 인프라에 투자만 과감하게 한다면 '출산율 1.08명의 쇼크'는 과연 극복될 수 있을까.

답은 '노(No)'다.전문가들은 젊은 세대들에게 끊임없이 출산을 기피하도록 '암묵적인 메시지'를 주입하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바꾸지 않는 한 저출산 문제는 요원한 난제로 남을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초·중등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나 TV 프로그램에 만연해 있는 반(反) 출산적 콘텐츠,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 의식을 바꾸지 않고서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는 지적이다.

○교과서부터 바꾸자이삼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저출산정책연구팀장은 "미래 우리 사회를 짊어질 세대가 배우는 교과서부터 과감히 뜯어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용은 이런 것들이다.

"현대는 가히 인구 폭발의 시대라고 부를 만하다.이처럼 엄청난 인구 증가는 자연환경 파괴,식량 부족 등 여러가지 문제를 낳고 있기 때문에 인류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중3 사회교과서.2002년.디딤돌.176쪽)

"연 평균 3%를 넘던 인구증가율이 2000년 현재 1% 미만을 유지하게 되어 인구성장의 안정기에 도달하였다.

이러한 인구증가율의 저하는 정부의 강력한 인구정책의 실시와 경제성장 및 근대화에 따른 소자녀 가치관의 확대에 따른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교 한국지리 교과서. 두산. 146쪽)보건복지부와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초·중등학교 학생들이 이 같은 교과서의 오류 탓에 부지불식간에 핵가족이 정상적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며 교육인적자원부와 협의해 교과서 개편과 함께 출산장려 교육도 실시하기로 했다고 14일 밝혔다.

○TV 콘텐츠도 출산장려 쪽으로

TV 프로그램 내용 중에도 부지불식간에 출산억제를 강요하는 내용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모 방송국 인기 주말 드라마에서는 스무살을 갓 넘긴 딸이 임신을 이유로 결혼하겠다고 나서자 부모와 언니들이 "그깟 아이 때문에 네 인생을 망칠거냐"며 거세게 질타한다.

광고도 마찬가지다.

수영복 입은 여성들에게 둘러싸인 20대 독신남성의 행복한 표정 사이로 "아버지는 말하셨지 '인생을 즐겨라'"라는 멘트가 흐른다.

인생은 '내'가 충분히 즐기면서 편하게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대부분의 아파트 광고에는 젊은 부부와 단 한 명의 자녀가 '공식'처럼 돼 있다.

아예 연인처럼 사는 딩크족(Double Income No Kids) 부부만 등장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김은미 연세대 교수(매스미디어학)는 "아이가 없는 미혼 여성을 '성공한 여성'으로 전형화(stereotyping)하는 매스미디어의 경향은 가정의 본질과 자녀의 중요성을 해치고 있다"며 "특정 프로그램이 아니라 여러 매체가 전체적으로 동일한 가치관을 주입하는 '메타 메시지'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생명존중 교육도 시급

외국계 회사에 근무하는 이모씨(32)는 올초 결혼 2년 만에 아이를 가졌지만 남편과 상의해 임신중절수술을 받았다.

이씨는 "입사동기 중에서도 가장 능력을 인정받는 편이고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고 있는데 차마 지금 아이를 낳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여성들의 낙태수술 건수는 모두 34만2000건(복지부 통계).이 가운데 57.9%인 19만8000명이 이씨 같은 기혼여성들이다.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출산지원팀의 장정애 주무관은 "연간 태어나는 아이수(43만명)의 80%에 육박하는 태아들이 낙태되고 있다"며 "향후 낙태 문제는 저출산 대책의 핵심 안건으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