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자산디플레 대비 나섰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자산가격 폭락에 대한 우려가 국내 기업들의 경영 전선에도 밀어닥치고 있다.

기업들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완화하기 위한 주요 국가들의 금리 인상 움직임이 원자재-주식-부동산 가격의 동반 폭락을 야기함으로써 국내외 시장 전반의 구매력을 손상시킬 가능성이 고조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이에 따라 주요 기업들은 현금 확보를 중심으로 한 자산 재조정과 글로벌 자산 디플레이션(가격 하락)에 대한 대응책 마련에 들어갔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달 말 △토지 9필지 △건물 14개 △오피스텔 71개 등 총 1392억원어치의 보유 부동산을 외국계 자산유동화 전문회사인 '피케이원'에 매각했다.

처분 대상 빌딩에는 서울 강남의 글로벌마케팅 연구소를 비롯 대치빌딩 양평사옥 인천사옥 부천사옥 등이 포함됐다.삼성전자가 성격과 용도가 각각 다른 부동산을 일괄적으로 묶어 처분한 것은 다소 이례적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재무구조 건실화를 위한 차원"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부동산업계 일각에선 "삼성이 향후 부동산가격 하락에 대비해 보유 부동산을 팔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제기하고 있다.재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이 부동산을 내다팔면 다른 기업들도 영향을 받을 것"이라며 "실제 일부 기업이 부동산 매각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국제금융시장의 흐름과 관련,일본의 '제로 금리'를 기반으로 자금을 조성한 헤지펀드들의 동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올 하반기 중 일본이 금리 인상에 나설 것으로 내다본 '엔캐리 펀드'들이 보유 자산을 한꺼번에 처분할 경우 아시아권 금융시장은 엄청난 충격을 받을 수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LG그룹 역시 최근 잇달아 경영전략회의를 열고 자산 디플레이션 확산에 대한 경계심을 주요 계열사들에 강도 높게 주문하고 있다.

LG전자 고위 관계자는 "금값이 하루 사이 7%나 빠지는 현상을 보고 있으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불안하다"며 "향후 저환율과는 비교 할 수 없는 엄청난 리스크가 출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주식과 부동산 가격 폭락이 세계 상품시장에 엄청난 불황을 몰고올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이 같은 상황에서 상당수의 기업들은 금리가 더 오르기 전에 필요한 자금을 미리 확보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포스코의 경우 최근 4년 만에 회사채 발행을 재개해 자금운용 포트폴리오를 재조정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지난 3월 3000억원 상당의 채권을 발행한 데 이어 지난달 5000억원 규모의 5년 만기 회사채를 발행한 것.

포스코는 3조원이 넘는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지만 향후 금리 인상과 함께 예기치 않은 자금 수요에 대비해 현금을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현대자동차그룹에선 지난달 기아차가 회사채를 발행한 데 이어 하반기엔 다른 계열사들이 국내외에서 채권 발행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가운데 일부 기업들은 주가 하락기를 맞아 국내외 증권시장에서 인수·합병(M&A) 움직임이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고 경영권 방어 및 타기업 인수 전략을 가다듬고 있다.

내부 지분이 취약한 기업들은 대주주의 지분 매입이나 회사의 자사주 취득을 늘릴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30대 그룹에 속하는 모기업의 한 임원은 "그동안 주가가 너무 올라 지분 추가 확보에 엄두를 내지 못했지만 올 하반기에는 매입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