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노조 산별 전환 비상] (中) "쟁점 합의해도 상부 지침따라 파업 예사"

"노사 협상에서 쟁점 사항에 대해 여러 차례 의견 접근을 했으나 결국 산별노조 본조의 개입으로 번번이 결렬됐습니다.

산별 교섭은 노사 안정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악화시킬 뿐입니다." 9개월간의 파업과 3개월여의 휴업에 시달린 금속인쇄업체 D사의 한 간부는 26일 산별 노조가 노사 관계를 악화시키는 주범이라고 지적했다.

개별 기업 노사가 협상을 통해 능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산별 노조가 개입하면 엉뚱한 방향으로 흐른다고 강조했다.


충남 아산에 있는 이 회사는 2004년 4월 금속노조 지회가 설립돼 그 해 7월부터 2005년 4월까지 파업을 겪었다.노조의 요구는 주5일 근무제 실시에 따른 근로조건 문제와 유니온숍제 도입 등이었다.

산별 노조에서 파견한 교섭 대표가 함께 참여한 노사 협상이 좀처럼 타결점을 찾지 못하자 노조는 파업에 돌입했다.

'알짜 경영'으로 소문났던 이 회사는 장기간 파업으로 엄청난 손실을 입어야 했다.

2005년 4월 노사 협상이 가까스로 타결됐지만 경영 악화로 회사는 같은 해 12월 40명의 종업원을 해고했다.

노조가 이에 반발해 농성을 벌이자 회사는 올해 초 3개월여 동안 휴업을 단행했다.이 회사 관계자는 "노동운동 경험이 없던 노조였기에 협상 과정에서 산별 노조의 지침을 따른 것으로 안다.

노조가 회사 사정을 감안하지 않고 외부 세력의 입김에 휘둘려 어처구니 없는 결과를 낳았다"며 울분을 터뜨렸다.

파업기간 중 이 회사에는 단병호 심상정 강기갑씨 등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현장을 방문해 노조원들을 격려했지만 정작 사태 해결의 키를 쥐고 있는 경영진은 아예 만나지도 않았다고 회사측은 밝혔다.

경주에 있는 자동차 부품회사인 B사에 다니는 P이사는 산별 교섭의 폐해를 실감했다.

2003년 회사 내 노사 쟁점이 타결됐는 데도 노조는 파업을 강행했다.

당시 노조는 산별 노조의 연대파업 지침에 따라 주5일 근무제 실시와 비정규직 차별 철폐,근골격계 대책 마련 등을 주요 이슈로 내걸었다.

하지만 이미 회사는 노조의 요구를 들어 주기로 잠정 합의한 상태였다.

이같은 상황에서도 노조는 금속노조가 오래 전에 잡아놓은 투쟁 일정에 맞춰 어쩔 수 없이 파업을 벌인 것이었다.

이러다 보니 산별 교섭에 불만을 품고 산별 노조에서 벗어나는 노조들도 있다.

2004년 보건의료노조가 노사 간 협상을 타결했을 때 서울대병원 노조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탈퇴 의사를 밝혔다.

'근로시간 단축 및 임금 등의 산별 합의안이 지부 협약안이나 취업 규칙에 우선한다'는 산별 합의안 10장 2조가 노동 조건을 악화시킨다는 이유에서였다.

조합원 2200명으로 120여개 보건의료노조 가운데 최대 규모인 이 노조는 대형 사업장의 이기주의라는 비난이 있었지만 결국 2005년 4월 보건의료노조를 뛰쳐나갔다.

노조원들 스스로가 작은 병원 노조와 함께 협상을 벌이는 게 조합원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절감했기 때문이다.산별전환 투표를 앞두고 있는 현대차 등 대기업 노조들도 산별 전환할 경우 이 같은 현실에 부딪칠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