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고구려

서기 612년(영양왕 23년) 수나라 양제는 113만 대군으로 고구려를 총공격했다.

고구려의 서북 성인 요동성을 치는 한편 서해를 건너 평양으로 진격하려 했지만 요동성은 꼼짝하지 않았고 수군은 전멸당했다.수는 30만명의 별동대로 다시 쳐들어왔으나 을지문덕의 지략에 빠져 회군중 살수에서 몰사했다.

살아 돌아간 군사는 겨우 2700명.수나라는 이후 재차 공략했으나 패퇴했고 결국 패망의 길을 걸었다.

역사상 유례없는 살수의 승리를 조준은 이렇게 읊었다.'살수는 넓고 넓어 허공에 출렁일 때/수나라 백만대군 물고기밥 되었구려/지금도 어부들과 나무꾼의 이야기되어/나그네 웃음거리에도 미치지 못하네.'

살수대첩뿐이랴.645년(보장왕 4년) 당 태종의 100만 대군과 맞선 안시성 혈전의 승리는 고구려인의 기개를 만천하에 떨쳤다.

두 전투를 들지 않더라도 고구려는 실로 대국이었다.장장 705년(BC 37∼668)동안 존속했고 활발한 기동력과 우세한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중국의 동진을 맡고 4세기에 만주의 주인공으로 자리잡았다.

5세기엔 중국 북위와 외교관계를 맺고 남북으로 영토를 넓혔고,6∼7세기엔 중국의 통일왕조인 수와 당에 맞서 요동반도를 확보하는 등 우리 역사상 가장 많은 국토를 확장했다.

일찍이 말발굽소리로 광활한 만주 벌판의 지축을 흔들고 기개와 지혜로 동아시아의 패자가 됐던 것이다.오랜 세월 역사 속에 묻혀 있던 고구려가 TV드라마를 비롯한 문화예술계를 통해 깨어나고 있다.

MBC TV의 '주몽'이 인기를 모으는 가운데 SBS가 '연개소문'과 '태왕사신기', KBS가 발해의 건국자 '대조영'을 제작하는가 하면 고구려를 주제로 한 뮤지컬과 무용 작품이 나오고 책도 쏟아진다.

'중국의 동북아공정에 의해 훼손된 우리 역사의 복원운동'이라는 설명이 나오는 가운데 한류 바람에 따른 수출을 걱정한 중국측에서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그들이 뭐라건 고구려는 우리 민족의 자부심이자 긍지다.문화예술계에서 이는 고구려 붐이 우리 모두에게 '고구려의 힘'을 실어줬으면 싶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