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이웃속으로] 2006 경영 화두는 '사랑♥'

삼성이 변하고 있다.

단순히 상생-나눔경영을 확대한다는 뜻이 아니다.일류 취향을 물씬 풍겼던 임직원들은 겸양의 미덕을 익히기 시작했다.

무형의 가치를 위해 당장 손에 잡히는 작은 목표를 희생알줄 아는 여유도 생겼다.

몸가짐에 문제가 생기면 직장인으로서 장수할 수 없다는 경각심도 자라났다.모두 위기의식 덕분이다.

독불장군식 행태로는 시민사회와 대중들로부터 격리될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자신들의 합리적인 의도가 다른 한쪽에선 아집이나 거만한 독선으로 비쳐질 수 있다는 반추가 변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불우한 이웃이나 중소기업들을 돕고 지원하는 삼성의 손길엔 전에 없이 따뜻한 피가 흐른다.사랑과 정이 흐른다.

바야흐로 2006년 삼성의 최대 경영화두는 '사랑'이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얼마 전 "돌이켜 보면 2005년은 삼성에 삼재(三災)가 들었던 한 해였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그러면서 삼재의 내용으로 작년 5월께 이건희 삼성 회장의 고려대 명예박사 학위 수여식장에서의 소동-7월에 터져 나온 옛 안기부 'X파일' 사건-9월께 거센 논란이 일었던 일명 '금산법 파동' 등을 들었다.

모두 예기치 않은 계기로 불거진 사건들이었지만 삼성에는 재앙 그 자체였다.

모든 일들이 삼성에 돌아앉고 있던 시절이었다.

수습책을 내놓으면 먹히기는커녕 오히려 꼬여만 갔다.

고려대 소동으로 대학 보직교수들이 일괄 사퇴하자 '대한민국은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왔다.

경영권을 위협하는 공정거래법 11조에 대해 헌법 소원을 제기하자 "삼성이 막강한 영향력을 앞세워 마침내 정부에까지 도전한다"는 비난들이 쏟아졌다.

5년 전 수술을 받은 폐암 부위 재진단을 위해 미국에 머무르고 있던 이건희 회장에게도 '도피성 외유'라는 굴레가 씌워졌다.

올 2월4일 이건희 회장이 전격 귀국하면서 상황은 급반전하기 시작했다.

휠체어를 타고 공항에 나타난 이 회장은 "삼성이 비대하고 느슨해졌다"고 말했다.

국민들에게 죄송하다는 얘기도 잊지 않았다.

이렇게 방향이 섰다.

법적·경제적 논리의 옳고 그름을 떠나 국민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조직을 쇄신하고 경영구조를 개편하겠다는 쪽이었다.

2월7일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이 발표한 '국민께 드리는 말씀'은 이런 구상의 종합 완결판이었다.

이건희 회장 일가의 사재 헌납에서부터 옛 구조조정본부 축소 개편-헌법 소원 취하-무료법률봉사단 출범-대규모 자원봉사센터 개설-금융계열사 지배구조 개편-'삼성을 지켜보는 모임(일명 삼지모)' 발족 등과 같은 굵직 굵직한 내용들이 발표됐다.

삼성은 빠르게 움직였다.

지난 5월 삼지모 구성을 끝으로 거의 모든 프로그램들의 이행을 완료했다.

임직원들의 의식구조도 바뀌고 있다.

또 주주와 고객,나아가 국민들로부터 사랑받기 위해서는 과거의 의사결정과는 다른 잣대와 과감한 실행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가 모아졌다.

예를 들어 구조본의 역할을 축소한다는 발표에 대해 처음에 많은 계열사들은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구조본은 명칭을 전략기획실로 바꾸면서 계열사를 지도·감독하던 임직원들을 대거 소속 회사로 돌려보냈다.

이학수 실장은 이제 웬만한 계열사 업무는 보고도 받지 않겠다고 밝혔다.

경영권 보호를 위한 각종 '법적 투쟁'도 종식을 선언했다.

삼성이 단기간에 이처럼 과감한 변신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이건희 회장의 강력한 의지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1993년 '신경영' 선언을 통해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고 강조했던 이 회장은 이제 '글로벌 삼성'을 넘어서는 새로운 좌표를 주문하고 있다.변화 혁신 상생 나눔 등과 같은 기업 경영의 모든 가치들을 아우르는 것 말이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