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막 도전기] 소령 예편후 蘭가게 열어 첫달 1900만원 매출 김옥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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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 유성구 노은동에 자리잡은 우리풍란정(www.wooriran.co.kr)의 김옥성씨(45)는 지난 5월31일 육군 소령으로 예편했다. 제대한 지 한 달 남짓인데 어떻게 벌써 어엿한 사장님이 되었을까?
김씨는 제대를 준비하던 지난 2월19일 풍란전문점을 연 이후 4개월여 만에 월매출 1900만원을 거뜬하게 올리고 있다. 그는 군시절 취미생활로 시작한 풍란 재배를 창업으로 연결,제2 현역생활을 성공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소령 진급 후 근무평정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일찌감치 중령 진급을 포기했습니다.
전역 후 재취업을 생각했지만 길어야 10년이면 또다시 같은 고민에 빠져들게 뻔하기 때문에 평생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판단했지요."
인생 후반기를 걸어볼 만한 일거리를 찾기 위해 밤낮으로 고심하던 그의 눈에 거실의 난초가 들어왔다.당시 그는 동료로부터 '석부작'이라는 난초 1점을 선물받아 애지중지 키워오던 터였다.
흙에 뿌리를 내리며 살아가는 다른 식물들과 달리 돌에 붙어 자라는 석부작의 강한 생명력에 매료된 그는 동호회를 만들어 농장을 찾아다니며 전문지식을 습득할 정도로 난 키우기에 열심이었다.
"바로 이거다 싶었습니다." 그는 우선 그동안 취미로 배워오던 난초공부를 전문가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마음먹고 전문가들의 모임인 '석부작동호회'에 가입했다. 전문기술을 익히는 한편 틈틈이 전문농장을 찾아 시장 돌아가는 상황도 체크했다.2004년부터 공간을 많이 차지 하지 않고 화분에서 기르는 부귀란이 유행하자 부귀란과 석부작을 함께 취급하는 전문점을 창업하기로 방향을 선회했다.
"부귀란은 석부작보다 동호인들이 많은 관계로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지만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들었습니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농장을 찾아가 장차 전문점을 운영할 계획임을 밝히고 종자목을 싸게 구입해 재배기술을 익혔습니다."'제대 후 인생이 여기에 걸렸다'는 절박감으로 김씨는 퇴근 이후 시간을 전부 난초에 쏟았다. 마침내 2005년 대전KBS가 주최한 동호회전시회에서 최고의 전문기술을 인정받아 공로패까지 받았다.
"이제 기술적으론 창업을 해도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경영과 마케팅기술을 습득하는 것.그는 제대를 앞둔 군장병들을 위해 보훈청이 실시하는 직업보도반 교육부터 시작했다.
그는 교육내용대로 실천했다.
'군복색을 빨리 탈색해야 사회 경쟁에서 살아남는다'는 강사의 강의에 자극받은 김씨는 고객관리를 위한 심리상담자격증까지 딸 정도로 철저하게 변신 준비과정을 밟았다.
'난가게는 인터넷쇼핑몰을 제대로 운영하면 잘된다'는 창업전문잡지의 가이드에 따라 소상공인지원센터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교육을 이수하고 쇼핑몰을 직접 제작했다.
"300여만원의 비용을 절감한 것도 뿌듯했지만 거의 컴맹에서 신세대 네티즌들과 소통할 정도로 젊어졌다는 사실이 더욱 보람있었습니다." 그는 이젠 포털사이트에 카페와 블로그 6개를 개설해 풍란을 홍보하며 회원 확보에 나설 정도로 컴퓨터와 친숙해졌다.
김씨는 난에 관한 한 우리보다 몇 수 앞선 일본을 배우기 위해 일본어까지 배웠다. '사업을 잘 하려면 주위에 찾아오는 지인들이 많아야 한다'는 말을 들은 그는 '마당발'이 되기 위해 그동안 나가지 않았던 각종 모임마다 틈만 나면 얼굴을 내밀었다.
창업 1년 전부터는 명함을 미리 제작해 만나는 사람마다 건넸다.
제대날짜가 석달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그는 창업을 결행한다.
'신규 고객을 많이 창출하려면 화훼단지가 적지'라고 판단한 그는 전국에서 고객이 찾아오기 쉬운 호남고속도로 유성IC에서 1㎞ 떨어진 곳에 있는 화훼단지를 찾아냈다.
대로변의 비닐하우스를 분양받은 그는 부귀란 구입비 2000만원을 포함해서 1억5000만원을 들여 창업을 했다. 자금은 군인공제회 융자금 7000만원과 퇴직일시금 4000만원,저축한 돈 4000만원으로 충당했다.
보훈처의 창업교육 참가 등 준비된 '은퇴 후 창업'덕분에 초반부터 수익을 내고 있다.단골 손님과 VIP고객층이 형성되고 쇼핑몰 고객도 대폭 늘어나고 있다. "구체적인 준비 없이 마음고생만 하면서 막연하게 전역을 하는 군인들이 너무 많아 안타깝다"는 김씨는 "미리 목표를 정하고 착실하게 준비하면 인생 후반기에 오히려 삶의 진가를 맛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전=백창현 기자 chbaik@hankyung.com
김씨는 제대를 준비하던 지난 2월19일 풍란전문점을 연 이후 4개월여 만에 월매출 1900만원을 거뜬하게 올리고 있다. 그는 군시절 취미생활로 시작한 풍란 재배를 창업으로 연결,제2 현역생활을 성공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소령 진급 후 근무평정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일찌감치 중령 진급을 포기했습니다.
전역 후 재취업을 생각했지만 길어야 10년이면 또다시 같은 고민에 빠져들게 뻔하기 때문에 평생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판단했지요."
인생 후반기를 걸어볼 만한 일거리를 찾기 위해 밤낮으로 고심하던 그의 눈에 거실의 난초가 들어왔다.당시 그는 동료로부터 '석부작'이라는 난초 1점을 선물받아 애지중지 키워오던 터였다.
흙에 뿌리를 내리며 살아가는 다른 식물들과 달리 돌에 붙어 자라는 석부작의 강한 생명력에 매료된 그는 동호회를 만들어 농장을 찾아다니며 전문지식을 습득할 정도로 난 키우기에 열심이었다.
"바로 이거다 싶었습니다." 그는 우선 그동안 취미로 배워오던 난초공부를 전문가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마음먹고 전문가들의 모임인 '석부작동호회'에 가입했다. 전문기술을 익히는 한편 틈틈이 전문농장을 찾아 시장 돌아가는 상황도 체크했다.2004년부터 공간을 많이 차지 하지 않고 화분에서 기르는 부귀란이 유행하자 부귀란과 석부작을 함께 취급하는 전문점을 창업하기로 방향을 선회했다.
"부귀란은 석부작보다 동호인들이 많은 관계로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지만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들었습니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농장을 찾아가 장차 전문점을 운영할 계획임을 밝히고 종자목을 싸게 구입해 재배기술을 익혔습니다."'제대 후 인생이 여기에 걸렸다'는 절박감으로 김씨는 퇴근 이후 시간을 전부 난초에 쏟았다. 마침내 2005년 대전KBS가 주최한 동호회전시회에서 최고의 전문기술을 인정받아 공로패까지 받았다.
"이제 기술적으론 창업을 해도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경영과 마케팅기술을 습득하는 것.그는 제대를 앞둔 군장병들을 위해 보훈청이 실시하는 직업보도반 교육부터 시작했다.
그는 교육내용대로 실천했다.
'군복색을 빨리 탈색해야 사회 경쟁에서 살아남는다'는 강사의 강의에 자극받은 김씨는 고객관리를 위한 심리상담자격증까지 딸 정도로 철저하게 변신 준비과정을 밟았다.
'난가게는 인터넷쇼핑몰을 제대로 운영하면 잘된다'는 창업전문잡지의 가이드에 따라 소상공인지원센터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교육을 이수하고 쇼핑몰을 직접 제작했다.
"300여만원의 비용을 절감한 것도 뿌듯했지만 거의 컴맹에서 신세대 네티즌들과 소통할 정도로 젊어졌다는 사실이 더욱 보람있었습니다." 그는 이젠 포털사이트에 카페와 블로그 6개를 개설해 풍란을 홍보하며 회원 확보에 나설 정도로 컴퓨터와 친숙해졌다.
김씨는 난에 관한 한 우리보다 몇 수 앞선 일본을 배우기 위해 일본어까지 배웠다. '사업을 잘 하려면 주위에 찾아오는 지인들이 많아야 한다'는 말을 들은 그는 '마당발'이 되기 위해 그동안 나가지 않았던 각종 모임마다 틈만 나면 얼굴을 내밀었다.
창업 1년 전부터는 명함을 미리 제작해 만나는 사람마다 건넸다.
제대날짜가 석달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그는 창업을 결행한다.
'신규 고객을 많이 창출하려면 화훼단지가 적지'라고 판단한 그는 전국에서 고객이 찾아오기 쉬운 호남고속도로 유성IC에서 1㎞ 떨어진 곳에 있는 화훼단지를 찾아냈다.
대로변의 비닐하우스를 분양받은 그는 부귀란 구입비 2000만원을 포함해서 1억5000만원을 들여 창업을 했다. 자금은 군인공제회 융자금 7000만원과 퇴직일시금 4000만원,저축한 돈 4000만원으로 충당했다.
보훈처의 창업교육 참가 등 준비된 '은퇴 후 창업'덕분에 초반부터 수익을 내고 있다.단골 손님과 VIP고객층이 형성되고 쇼핑몰 고객도 대폭 늘어나고 있다. "구체적인 준비 없이 마음고생만 하면서 막연하게 전역을 하는 군인들이 너무 많아 안타깝다"는 김씨는 "미리 목표를 정하고 착실하게 준비하면 인생 후반기에 오히려 삶의 진가를 맛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전=백창현 기자 chbai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