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태 한은총재 "성장잠재력 계속 하락, 4%에 가까워"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12일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최근 4% 가까이로 떨어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고위 정책당국자가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을 '4% 초반'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이 총재는 이날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금융연구원 주최 조찬강연회에서 "국내 경제는 연율 기준으로 4% 정도 성장하고 있는데,단기적으로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는 것보다는 성장잠재력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잠재성장률은 물가 상승을 초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달성 가능한 성장률로,미국의 잠재성장률이 3~4%라는 점을 감안하면 4% 초반의 잠재성장률은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 국가로서 지나치게 낮은 수준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을 향후 5년간 4.8%로 추정하고 있다.이 총재는 최근 잠재성장률이 떨어진 이유로 기업들의 설비투자 부진을 꼽았다.

그는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의 투자 규모가 불변가격 기준으로 거의 변화가 없고 투자활동도 정체됐다"며 "기업들은 위험을 제대로 측정하지 못해 모험을 회피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통화정책이나 재정정책이 장기적인 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은 제한돼 있다"며 "투자와 소비는 기업과 가계가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부는 환경을 만들어 주기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강봉균 열린우리당 정책위 의장 등 열린우리당에서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경기부양적인 재정·통화정책을 비판한 셈이다.

물가에 대해서는 "일반인이 체감하는 것과 한국은행이 느끼는 것에는 6개월 정도의 시차가 있다"며 "올해 말과 내년 초에는 물가가 전년 동기 대비 3% 정도로 올라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그는 "고유가에도 불구하고 원화 환율 하락에다 농산물가격 안정까지 겹치면서 물가가 지금까지는 안정됐다"며 "그러나 지금까지의 좋은 시절은 다 지나가고 어려운 시절이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