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비

'소낙비는 오지요/소는 뛰지요/바닥에 풀은 허물어지지요/설사는 났지요/허리끈은 안풀어지지요/들판에 사람은 많지요.''7월 더운 때/바람 세게 불어 빗발 어지럽게 날리는 날/시원해서 부채 까맣게 잊고/땀내 조금 밴 면옷을/푹 뒤집어쓰고 낮잠 자는 기분이란/말로 이루 다할 수 없다.'

앞의 것은 김용택씨의 시 '이 바쁜 때',뒤의 것은 1000여년 전 쓰여진 '극락이 따로 없다'('枕草子'중에서)는 글이다.비(雨)는 늘 이렇게 상반된 모습을 지닌다.

땅이 쩍쩍 갈라지는 가뭄 끝에 내리는 장대비는 물론 뜨거운 여름날 시원하게 쏟아지는 한 줄기 소나기는 하늘을 향해 절로 고개 숙이게 만든다.

서늘한 바람과 함께 후두둑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온가족이 둘러앉아 먹는 찐 감자와 빈대떡 맛 또한 세상 그 어떤 산해진미에 비하기 어렵다.그러나 들어설 나무 한 그루 없는 곳에서 만나는 비는 원망스러울 뿐이다.

하물며 하늘이 뚫린 듯 퍼부어 논밭은 물론 집과 길까지 쓸어가버리는 경우엔 끔찍한 괴물이 따로 없다.

강원도를 비롯한 전국 곳곳을 강타,수많은 이재민을 내고 있는 집중호우는 '비'라는 말만 들어도 진절머리를 치게 한다.문제는 이런 집중호우가 갈수록 늘어난다는 것이다.

60년대까지 연간 2.7회 정도던 하루 100mm 이상 폭우가 최근엔 10회 이상 나타나고 200mm 이상도 잦아지고 있다는 보고다.

집중호우가 더 이상 기상이변이 아니라는 얘기다.원인은 동해의 수온 상승과 무관하지 않다고 한다.

해수 온도가 오르면 대기 속 포화수증기가 증가,대류권이 불안정해지는데 여름철 한반도는 수분을 잔뜩 머금은 북태평양 기단과 저온건조한 시베리아·티베트 기단이 충돌하는 지점이라는 것이다.

이쯤 되면 '사랑은 우산을 타고'식의 낭만적 얘기 따윈 할 수 없다.

언제 어디서 얼마만큼 퍼부을지 모르는 까닭이다.

지구온난화를 부추기는 온실가스를 줄여야 한다는 건 원론적 얘기고,당장은 집중호우에도 끄떡 않도록 매사 철저히 대비하는 게 우선이다.그보다 급한 건 제발 그만 내렸으면 하는 것이고.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