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섬發 위기 油化로 번지나

화학섬유산업에서 촉발된 위기가 원료업체인 석유화학회사로 도미노처럼 번지고 있다.

고유가 상황에서 한동안 호황을 누리던 유화업체들이 수요업체인 화섬업체들의 구조조정과 원료값 인상으로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화섬원료인 TPA(고순도텔레프탈산) 사업에 투자했던 영국 BP는 한국에서 발을 빼 중국으로 건너가기로 하는 등 사업포기 사례도 나왔다.

영국 BP가 지난 18일 삼성석유화학에 투자했던 47.41% 지분을 팔고 한국에서 철수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한국 TPA 시장에 대한 장기전망이 불투명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BP의 데이브 밀러 글로벌 TPA부문 사장은 "삼성석유화학과는 훌륭한 비즈니스를 해왔지만 장기전략에서 삼성측과 전망을 달리했다"고 철수 이유를 밝혔다.이어 "더 낮은 비용으로 생산할 수 있는 중국과 유럽 TPA사업에 집중하겠다"고 덧붙였다.

BP는 지난달 중국 푸화(富華)그룹과 함께 중국 남부의 경제특구인 주하이에 연산 90만t 규모의 TPA공장 건설에 착수했다.

중국으로 생산기지를 이전하는 이상 더이상 한국측과 합작을 유지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얘기다.삼성석유화학 등 TPA업체들은 원료인 PX(파라자일렌) 가격이 꾸준히 오르는 반면 생산제품인 TPA가격은 제대로 올리지 못해 상반기 실적이 급속도로 악화됐다.

원료인 PX 가격은 7월 t당 1150달러로 1년 전에 비해 38.5% 올랐으나 TPA는 766달러에서 983달러로 28.2% 오르는 데 그쳤다.

TPA를 1t 생산할 때 PX 0.67t이 들어가는 것을 감안하면 원료가격과 제품가격의 차이가 지난해 300달러대에서 200달러로 격차가 줄어든 셈이다.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지난해보다 22% 증가한 600만t,내년에는 700만t까지 설비를 늘릴 계획이어서 국내 TPA업체들의 어려움은 가중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화섬원료인 EG(에틸렌글리콜)를 주력으로 하는 호남석유화학도 1·4분기 매출액이 전년 동기에 비해 6.8%,영업이익이 61.9% 줄어든 데 이어 2분기에도 감소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수요업체인 한국합섬 동국무역 태광산업 코오롱 등 화섬업체들은 설비가동률을 낮추거나 스판덱스 등의 생산을 중단하는 구조조정을 계속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의류업체→화섬업체→석유화학업체→정유업체 등 상위 연관산업(업스트림) 쪽으로 위기가 전이(轉移)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삼성석유화학 관계자는 "화섬에서 벌어들인 돈을 사업다각화에 쏟아부은 화섬업체와 달리 유화업체는 연구·개발(R&D) 등 생산성 향상에 주력하고 있어 구조조정 위기에 직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태웅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