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DA협상 결국 결렬] 개도국 "돕는다더니...860억弗 날아갔다"

관세 인하를 통한 농산물시장 개방 및 농업보조금 축소를 주된 내용으로 추진돼 온 세계무역기구(WTO)의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이 결렬됨에 따라 선·후진국별,산업별로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이번 협상 결렬의 최대 피해자는 농업을 주된 산업으로 하는 최빈국들이라는 게 공통된 지적이다.반면 협상이 깨지게 된 원인을 제공한 당사국인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업종에 따라 약간의 희비 차이는 있지만 정작 크게 손해를 입은 게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결국 무역 자유화를 통해 개도국의 경제 발전을 지원한다는 취지로 출발한 DDA 협상이 개도국에는 아무 것도 남겨 주지 못한 채 최대 피해자로만 남게 하는 결과를 낳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패자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5일 "DDA 협상 결렬의 최대 피해자는 개도국"이라며 "이는 비극적인 결과"라고 지적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무역 자유화를 통해 전 세계가 누릴 수 있는 이득은 10년 후 약 2870억달러이며 이 중 860억달러는 개도국 몫으로 추산된다.

선진국의 시장 개방으로 개도국이 농산물 등의 수출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혜택이 이 정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이는 최소 6600만명을 가난에서 구제해 줄 수 있는 규모다.

그러나 DDA 협상이 결렬됨으로써 이 같은 이득은 고스란히 사라진다.

그린피스를 비롯한 비정부 기구들이 협상 결렬의 주역인 미국과 EU를 동시에 비난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이들은 자국의 이익을 챙기려는 부유한 국가들의 이기심이 가난한 나라들의 비참한 현실이 지속되도록 만들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빈국은 아니지만 브라질 호주 뉴질랜드 등 농업이 전체 산업과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나라도 선진국 시장 진출이 막혀 상대적으로 막대한 손해를 보게 됐다.

선진국 중 일본이나 독일 기업 등 수출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도 무역 자유화가 이루어질 경우 수출 증가로 기대할 수 있었던 혜택을 놓치게 됐다.

○승자

파스칼 라미 WTO 사무총장은 협상 결렬 후 기자회견에서 "이득을 본 사람도 손해를 본 사람도 없다. 우리 모두 패자다"고 말했지만 속으로 웃는 사람도 있다고 언론들은 보도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 정부로부터 막대한 보조금을 받는 미국 농가가 협상 결렬의 가장 큰 수혜자라고 지목했다.

이들은 정부 보조금을 통해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농산물을 계속 생산 및 수출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농업이 아닌 산업에 종사하는 미국과 유럽 기업 중에도 수혜자가 많다.

특히 다자간 협상이 아닌 FTA를 통해 자국이 특정국과 무역 자유화를 이룬 품목을 교역하거나 생산하는 기업들엔 이번 협상 결렬이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경제적인 이득을 얻은 것은 아니지만 가난한 나라의 정치인들 역시 협상 결렬로 이득을 얻었다고 FT는 분석했다.

이들은 자국의 농민들을 값싼 수입 농산물로부터 보호했다는 '정치적인 점수'를 얻게 됐기 때문이다.한 개도국 장관은 자신의 반대로 DDA가 결렬된 것으로 알려지면 자신은 선거 운동 없이도 쉽게 선거에서 당선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선태 기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