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포럼] 혼자살거나 사표쓰거나

박성희 < 논설위원 >

과년한 딸을 둔 집집마다 부모들의 비명소리가 낭자하다.딸이 결혼할 생각은 하지 않고 일에만 매달려 있으니 답답하기 이를데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남들이 부러워하는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혼자 해외유학을 떠나겠다고 나서면 부모된 도리로 막을 순 없지만 속이 까맣게 탄다고 한숨 짓는다.

딸들의 입장은 다르다.결혼은 선택이지만 취업은 필수다,일에 전념하다 보니 남자를 사귈 틈이 없다,평생 남편과 자식만 쳐다보며 산 엄마처럼 되고 싶지 않다,결혼 후 가사와 육아에 치여 쩔쩔매는 여자선배를 보니 끔찍하다,여성의 한계를 극복하고 평생직업을 가지려면 남다른 전문지식을 가져야 하니 재교육을 받지 않으면 안된다 등.

이유가 뭐든 분명한 사실은 결혼을 사회생활의 무덤처럼 여긴다는 점이다.

결혼하면 퇴직해야 한다든가 내놓고 차별하는 곳은 드물다는데도 결혼해 아이를 낳고도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지 못하는 셈이다.그러니 혼자 살거나,결혼해서도 당당할 수 있는 전문직을 준비한다는 얘기다.

10년 전 대기업에 취직했던 여성 중 남은 사람이 37%뿐이라는 건 결혼을 미루거나 피하는 딸들의 변이 괜한 걱정이나 막연한 불안에서 비롯된 게 아님을 드러낸다.

물론 남자라고 몽땅 다니는 건 아니고 과거에 비하면 37%도 적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남아있는 인력의 결혼 여부와 직급을 조사하면 문제는 또 다를지 모른다.더이상 금녀구역은 없고 여성의 한계를 가로막는 유리천장도 거의 사라졌다고 한다.

그러나 남보다 앞서가거나 '최초'라는 부사가 붙는 여성의 상당수가 미혼이라는 사실은 여성의 사회 진출이 여전히 쉽지 않음을 입증한다.

여성의 고급인력 시장 진출률은 급증하는데도 중도탈락률은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도 그렇다.

이유는 많지만 첫째는 직장에서의 평가가 업무시간내 일로만 이뤄지지 않는 풍토다.

야근은 물론 회식도 업무의 연장으로 여기고 따라서 인정받으려면 공사 구분 없이 일하라고 한다.

오죽하면 '한국 가정엔 아빠가 없다'는 조사결과가 나왔을까.

사정이 이런데 여성은 결혼하면 가사노동과 육아 책임까지 고스란히 떠안는다.

결국 일과 가정 사이에서 고심하던 기혼여성 대다수가 자의반 타의반으로 사표를 쓴다.

똑같이 입사해도 '남자는 사장(社長) 되고 여자는 사장(死藏) 되는' 것이다.

물론 고급인력 시장에서 여성들이 사라지는 게 회사나 세상 탓만이라고 하긴 어렵다.

여성에 대한 차별적 의식이나 관행이 남아있다고 해도 여성들이 제 몫을 찾지 못하는 보다 큰 요인은 궂은 일,책임질 일은 피하려 들고,폭넓은 인간관계 구축 노력을 소홀히 하는 것이라는 주장도 많다.

어떻든 이대로는 안된다.

여성이 결혼과 일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계속되는 한 무슨 수를 써도 출산율 제고는 요원한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하다.

결혼과 일은 양자택일의 대상일 수 없다.

출산율을 높이려면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을 인생의 걸림돌로 생각하지 않도록 하는 게 최우선이다.

그러자면 일단 육아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공동의 책무로 여기는 인식의 전환 및 기혼여성에 대한 공정한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출산보조금과 육아지원책은 그 다음 일이다.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