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夏安居 해제 … 덕숭총림 수좌 설정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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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내 고요하던 절집이 이른 아침부터 술렁댄다.
스스로를 산문(山門)에 가두고 정진하던 스님들이 석 달간의 공부를 마치고 떠나는 날.걸망을 멘 스님들의 발걸음이 가볍다.기나긴 장마와 더위로 고생했던 날들,무엇을 얻고 가는 것일까.
활짝 핀 납자(衲子)들의 미소가 장마 끝 햇살 같다.
음력 7월 보름인 8일 오전 충남 예산군 덕산면의 덕숭총림 수덕사 총림선원이 있는 산내 암자 정혜사.이곳 능인선원에서 하안거(夏安居)에 참여했던 25명의 납자들이 아침 공양(식사)을 끝내자마자 일제히 짐을 챙겨 수덕사 법당으로 향했다.하안거 해제(解制)법회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이날 해제법회에서 덕숭총림 방장 원담(圓潭) 스님은 "결제(結制)에 결제가 없는 것이 옳은 결제요,해제에 해제가 없는 것이 옳은 해제"라며 쉼 없는 정진을 당부했다.
깨달음을 얻어야 진짜 해제라는 뜻이다.해제 전날 저녁 서울에서 찾아온 기자들을 만난 덕숭총림 수좌(首座) 설정(雪靖·66) 스님은 "선(禪)은 마음 속에서 모든 걸 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한 방편인 화두는 일체의 못된 정신을 자르는 칼입니다.
그동안 살면서 든 습관과 분별을 자르는 도구지요.그러므로 하나의 화두를 잡으면 아주 철저한 마음으로,이번 생에 안 되면 다음 생까지 한다는 각오로 공부해야 합니다."
그래서 선방에 발을 들인 납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공부에 몰입한다.
신문·잡지·텔레비전·휴대전화 등 세상과의 끈은 모두 끊어지고 말도 많이 해선 안된다.
음식은 적게 먹고 일체의 편리함도 거부한다.
"선사들이 가장 경책하는 것이 방일(放逸)함,즉 노는 것입니다.
힘든 길을 스스로 선택해 걷는 것이 수행자의 길인데 주어진 모든 편리를 다 수용하고 살아서는 안 되지요.
그래서 정혜사 대중들은 새벽 2시에 일어나 예불한 뒤 참선을 시작합니다.
또한 능인선원에서는 일하는 것을 중시해서 채소 등은 자급자족하는 걸 원칙으로 하고 있어요.
좌선 뿐만 아니라 일하는 가운데서도 화두를 놓치지 않는 동정일여(動靜一如)를 이루는 것이지요."
이곳 납자들은 하루에 아침·점심만 먹고 저녁은 거르는 오후불식(午後不食)을 많이 하고 한 끼만 먹는 사람도 적지 않아 안거 동안 보통 4~5㎏,많으면 10㎏씩 체중이 준다고 설정 스님은 전했다.
오랜 장마와 더위는 어떻게 이겨냈을까.
"정진하는 사람은 날씨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당장 수해로 고통받는 중생을 돕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진하고 깨달음을 얻어서 여러 중생들에게 이익을 주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불교는 지혜와 자비의 종교인데 자기의 지혜가 열리지 않은 채 남을 돕는다는 건 수영을 못하는 사람이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겠다는 것이나 다름 없지요.
속세의 어려움을 보면서 하루 속히 지혜의 문을 열고 조사관문을 타파하려는 원이 더욱 간절해졌습니다."
덕숭산은 조선 말 불교가 쇠퇴하고 선맥이 끊어질 즈음 경허(鏡虛) 스님이 선풍을 다시 일으켰고 만공·수월·혜월·한암 스님 등 불교 중흥의 주역들이 살았던 곳.지금도 산 전체가 수행도량이어서 능인선원은 물론 비구니선원인 견성암,보덕사 등에서 220여명이 하안거에 동참했다.
설정 스님은 "선은 특정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승속과 종교를 불문하고 해야 할 일이며 인간의 지혜를 계발하는 최상의 방편"이라고 강조했다.
"안거 중에 신자들이 와서 세상 걱정하는 것 들었는데 어떤 일이 있어도 전쟁은 막아야 합니다.
우리가 자주적으로 통일할 수 있는 역량을 비축하고 남북이 서로 동포애를 발휘해야 해요.
갈등은 불신(不信)에서 오고,불신은 진실하지 못한 데서 옵니다.
자기와 남을 속이지 말아야 해요.
모두가 진실함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능인선원에서 하안거를 마친 벽안의 현각 스님(화계사 국제선원장·베스트셀러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의 저자)은 "이곳에서 공부하면서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 알게 됐다"고 했다.참선공부를 하면 할수록 항상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자신의 부족함을 알게 된다는 것.그는 "저 먼 곳의 갈등과 시비를 해결할 것이 아니라 모두가 내 마음의 문제를 해결할 때 세계평화는 이뤄진다"면서 쉼 없이 정진할 것을 다짐했다.
수덕사(예산)=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스스로를 산문(山門)에 가두고 정진하던 스님들이 석 달간의 공부를 마치고 떠나는 날.걸망을 멘 스님들의 발걸음이 가볍다.기나긴 장마와 더위로 고생했던 날들,무엇을 얻고 가는 것일까.
활짝 핀 납자(衲子)들의 미소가 장마 끝 햇살 같다.
음력 7월 보름인 8일 오전 충남 예산군 덕산면의 덕숭총림 수덕사 총림선원이 있는 산내 암자 정혜사.이곳 능인선원에서 하안거(夏安居)에 참여했던 25명의 납자들이 아침 공양(식사)을 끝내자마자 일제히 짐을 챙겨 수덕사 법당으로 향했다.하안거 해제(解制)법회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이날 해제법회에서 덕숭총림 방장 원담(圓潭) 스님은 "결제(結制)에 결제가 없는 것이 옳은 결제요,해제에 해제가 없는 것이 옳은 해제"라며 쉼 없는 정진을 당부했다.
깨달음을 얻어야 진짜 해제라는 뜻이다.해제 전날 저녁 서울에서 찾아온 기자들을 만난 덕숭총림 수좌(首座) 설정(雪靖·66) 스님은 "선(禪)은 마음 속에서 모든 걸 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한 방편인 화두는 일체의 못된 정신을 자르는 칼입니다.
그동안 살면서 든 습관과 분별을 자르는 도구지요.그러므로 하나의 화두를 잡으면 아주 철저한 마음으로,이번 생에 안 되면 다음 생까지 한다는 각오로 공부해야 합니다."
그래서 선방에 발을 들인 납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공부에 몰입한다.
신문·잡지·텔레비전·휴대전화 등 세상과의 끈은 모두 끊어지고 말도 많이 해선 안된다.
음식은 적게 먹고 일체의 편리함도 거부한다.
"선사들이 가장 경책하는 것이 방일(放逸)함,즉 노는 것입니다.
힘든 길을 스스로 선택해 걷는 것이 수행자의 길인데 주어진 모든 편리를 다 수용하고 살아서는 안 되지요.
그래서 정혜사 대중들은 새벽 2시에 일어나 예불한 뒤 참선을 시작합니다.
또한 능인선원에서는 일하는 것을 중시해서 채소 등은 자급자족하는 걸 원칙으로 하고 있어요.
좌선 뿐만 아니라 일하는 가운데서도 화두를 놓치지 않는 동정일여(動靜一如)를 이루는 것이지요."
이곳 납자들은 하루에 아침·점심만 먹고 저녁은 거르는 오후불식(午後不食)을 많이 하고 한 끼만 먹는 사람도 적지 않아 안거 동안 보통 4~5㎏,많으면 10㎏씩 체중이 준다고 설정 스님은 전했다.
오랜 장마와 더위는 어떻게 이겨냈을까.
"정진하는 사람은 날씨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당장 수해로 고통받는 중생을 돕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진하고 깨달음을 얻어서 여러 중생들에게 이익을 주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불교는 지혜와 자비의 종교인데 자기의 지혜가 열리지 않은 채 남을 돕는다는 건 수영을 못하는 사람이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겠다는 것이나 다름 없지요.
속세의 어려움을 보면서 하루 속히 지혜의 문을 열고 조사관문을 타파하려는 원이 더욱 간절해졌습니다."
덕숭산은 조선 말 불교가 쇠퇴하고 선맥이 끊어질 즈음 경허(鏡虛) 스님이 선풍을 다시 일으켰고 만공·수월·혜월·한암 스님 등 불교 중흥의 주역들이 살았던 곳.지금도 산 전체가 수행도량이어서 능인선원은 물론 비구니선원인 견성암,보덕사 등에서 220여명이 하안거에 동참했다.
설정 스님은 "선은 특정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승속과 종교를 불문하고 해야 할 일이며 인간의 지혜를 계발하는 최상의 방편"이라고 강조했다.
"안거 중에 신자들이 와서 세상 걱정하는 것 들었는데 어떤 일이 있어도 전쟁은 막아야 합니다.
우리가 자주적으로 통일할 수 있는 역량을 비축하고 남북이 서로 동포애를 발휘해야 해요.
갈등은 불신(不信)에서 오고,불신은 진실하지 못한 데서 옵니다.
자기와 남을 속이지 말아야 해요.
모두가 진실함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능인선원에서 하안거를 마친 벽안의 현각 스님(화계사 국제선원장·베스트셀러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의 저자)은 "이곳에서 공부하면서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 알게 됐다"고 했다.참선공부를 하면 할수록 항상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자신의 부족함을 알게 된다는 것.그는 "저 먼 곳의 갈등과 시비를 해결할 것이 아니라 모두가 내 마음의 문제를 해결할 때 세계평화는 이뤄진다"면서 쉼 없이 정진할 것을 다짐했다.
수덕사(예산)=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