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前판사 판결 승복 못하겠다"

'판사가 돈을 받고 재판했다'는 비판이 거세지면서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법조브로커 김홍수씨로부터 거액의 금품을 받은 조관행 전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9일 새벽 1시께 구속수감되자마자 조 전 판사가 맡았던 재판의 공정성을 따지는 진정서가 접수됐다.법조계 안팎에선 김홍수씨가 청탁한 사건 중 90%가량이 김씨의 의도대로 처리된 만큼 조 전 부장판사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사건들에 대한 연쇄 진정 등 '사법불복' 사태로 확산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사법부 신뢰 흔들흔들
박모씨(54)는 9일 조 전 판사가 내린 판결에 대해 "브로커가 판결에 개입했는지 여부를 조사해달라"는 내용의 진정서를 서울 중앙지검 종합민원실에 제출했다.

박씨는 2004년 2억3000여만원이 걸린 매매대금 소송을 냈다.

박씨는 소송 과정에서 상대방이 자신에게 지급해야 할 2억3000여만원 중 9800만원가량을 '수표'로 줬다고 주장하며 위조전표를 제시했는 데도 재판부가 이를 묵인하고 재판을 진행했다고 강조했다.사건을 대리한 이모 변호사(33)는 위조된 전표에 대해 '사실확인'을 해달라고 재판부에 요구했지만 조 부장으로부터 "왜 시간 낭비를 하게 하느냐.말도 안 되는 증거 신청으로 재판부를 창피하게 하지 말라"는 면박만 들었다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우리 사건에 조 부장이나 브로커 김홍수씨가 연결됐거나 다른 브로커가 연계돼 있을 수 있어 조사해 달라고 요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송당사자인 박씨도 "조 부장의 잘못된 판단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강조했다.조 전 판사와 접했던 김 모 변호사는 "1심에서 승소한 내용에 대해 항소심 주심이던 조 전 판사가 별다른 이유 없이 갑자기 합의 조정을 권했다"며 "재판장의 조정 권고는 단순한 권고가 아니라 소송당사자에게는 항소심 패배나 수년간 걸리는 대법원에서의 공방을 의미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수사 대상 확대되나

조 전 부장판사와 김영광 전 검사,민오기 경찰총경 등 이른바 법조비리 '핵심 3인방'에 대한 구속으로 검찰 수사가 탄력을 받으면서 김홍수씨로부터 금품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현직 판사 3∼4명과 전·현직 검사 2∼3명에 대한 사법처리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이날 "(지난 4월부터 시작된) 기존 수사는 '5부 능선을 넘은 수준'에 불과했다"며 "핵심 3인방의 구속으로 주요 관계자의 신병이 확보돼 (기소할 때까지) 기간은 짧지만 수사 내용은 더 많아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검찰은 우선 1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대법원 재판연구관(판사) K씨와 2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부장검사 출신 P변호사 등에 대해서는 영장 청구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와 함께 법조비리 사건의 실체 규명이 진행되면 수사 초기부터 조사대상에 올랐던 7∼8명의 법조 관계인 외에 추가로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인규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핵심 3인 외에 관련자들도 원칙대로 엄정하게 처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조 전 판사는 지난 8일 영장발부심사에서 "비리 혐의로 나 이외에 3명 정도의 판사들이 조사받고 있는데 내가 유죄가 되면 다른 사람들도 유죄가 된다"고 말했다.조 전 부장은 브로커 김씨의 접대를 받는 자리에 배석 판사나 동료 판사들과 동행한 경우가 많았고,이 가운데 일부 판사는 이후 김씨와 단독으로 만나 돈독한 관계를 형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동욱·김현예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