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카드 인수 진두지휘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 47년 금융인생 마지막 승부수

지난 10일 오후 2시50분 여의도 산업은행 로비.LG카드 입찰 마감 10분을 앞두고 신한금융지주 실무자는 초조하게 전화 한 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손에 든 입찰서류에는 가격이 공란으로 남아 있었다.같은 시간 서울 남대문로 신한금융 본사 16층 회장실.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장고(長考)에 잠겨 있었다.

라이벌인 하나금융이 MBK파트너스와 전격적으로 손을 잡고 예상을 뛰어넘는 가격을 써낼 것이란 분석을 보고받은 뒤였다.

그는 긴 호흡을 내쉰 뒤 마침내 전화기를 들었고 산업은행에 나가 있던 실무자는 떨리는 손으로 공란을 메웠다.'주당 6만8000원'.라 회장이 47년 금융인생을 통해 던진 최고의 승부수였다.


신한금융이 LG카드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사실상 내정됨에 따라 라 회장은 국내 금융사에 또하나의 신화를 쓰게 됐다.

국내 2위(자산 규모) 신한은행과 국내 1위(LG카드 인수후 회원 수 기준) 신한카드사 등 12개 자회사,그리고 3000만명에 달하는 고객을 거느린 명실상부한 국내 최대 금융지주사를 건설한 최초의 수장으로 기록될 전망이다.라 회장은 상고 출신으로 금융지주사 회장 자리에 오른 '은행원 신화'로 통한다.

1938년 경북 상주의 가난한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주경야독으로 상주중학교를 졸업한 뒤 무작정 상경했다.

치과 기공소의 조수일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뒤늦게 선린상고 야간학교에 입학했다.졸업 후 59년 농업은행에 입행해 은행원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9년 뒤 68년 대구은행으로 스카우트되어 능력을 발휘,비서실장 자리에 올랐다.

당시 김준성 행장(이후 부총리 역임)을 수행해 일본 출장을 갔다가 후에 신한은행을 창립하는 이희건 신한금융지주 명예회장을 처음 만났다.

이 명예회장은 1977년 제일투자금융을 설립할 때 김 전 부총리의 천거를 받아 라 회장을 이사로 영입했고 79년엔 상무로 승진시켰다.

이후 라 회장은 82년 신한은행 창립멤버가 됐다.

91년 신한은행장에 오른 그는 철저한 소신 경영으로 현재의 신한금융그룹을 일궜다.

정치권이나 정부 관료들로부터의 대출 청탁을 일절 거절해 한보 부실채권을 최소화한 것이나 자신을 키워준 금융계 스승 김준성 전 부총리의 인사 청탁마저 거절한 것 등은 아직도 금융계에 회자되는 유명한 일화다.

이 같은 소신 경영 덕택에 은행장으로선 처음으로 3연임에 성공하며 8년간 은행장 자리를 지켰다.

그는 지주사 회장으로 2003년 조흥은행 인수에 성공,지난 4월 통합 신한은행과 통합 신한카드를 출범시켰다.

곧이어 비은행 계열사 확대 차원에서 이번 LG카드 인수전에 뛰어들어 특유의 승부 근성을 유감없이 발휘했다.특히 이번 LG카드 인수전은 금융계의 양대 카리스마인 라 회장과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 간 '벼랑 끝' 대결로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