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갤러리] '왼손의 쓸모'

보통 때는 잘 모른다

땅에 돈 떨어진 것을 발견했을 때내가 내 멱살을 잡고 뒤흔들어 놓을 때

참다 참다 말 안 듣는 자식 등짝 몇 대 후려칠 때

망설일 것 없이 왼손이 스프링처럼 확 튀어나간다.아버지 앞에서 오른손 부들부들 떨며 숟가락질 배운 탓에(…)

지금은 오른손으로 글을 쓰고 오른손으로 밥 먹고 살지만 위기가 닥칠 때 맨손으로 버티는 것이 왼손의 근성이다. (…)

오른손은 왼손의 쓸모를 수시로 빌려 쓰고 있다.바느질 할 때,돈 셀 때,생선 지느러미 가위질 할 때,

친정 이불장 사이에 봉투 찔러놓고 올 때

왼손이라야 더 날렵하게 끝을 낸다.상처의 칼집인 왼손이

생활의 현장 속으로 손 내밀 준비를 하고 있다.

사십년 넘게 교육 한 번 받지 않은 왼손이.

-김나영 '왼손의 쓸모'부분



모두가 1등이 되는 사회는 있을 수도 없겠지만 바람직하지도 않다.

크고 작은 것들이 섞여 있어야 빛나는 균형이 이뤄진다.

잡목과 들풀이 없으면 쭉쭉 뻗어 올라간 적송들도 공허해 보일 뿐이다.

오른손은 얼마나 많은 것을 왼손에 의존하는가.

사소하다는 이유로 꼭 필요한 역할까지 마다하는 세상이다.

그렇지만 아직은 평생 혜택 받지 못하고도 낮은 곳에서 제 할 일 다 하는 사람들이 많다.그런 사람들을 대접해 주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다.

이정환 문화부장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