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숙제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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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호주에서는 '숙제 논쟁'이 한창이다. 숙제를 반대하는 쪽에서는 "숙제와 학업성적은 아무 관련이 없으며 그 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내면서 생활의 지혜와 실질적인 정보를 얻는 것이 보다 교육적"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찬성하는 쪽에서는 "숙제가 없으면 방과 후에 할 일이 없어 TV나 컴퓨터 앞에 붙어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자칫 청소년 범죄나 마약 등을 접할 기회가 많아질 것"이라는 이유를 댄다.
논쟁의 발단은 빅토리아주의 한 신설 공립학교가 '숙제 금지'를 실행하면서부터 촉발됐다. 학교의 생각은 확고하다. "숙제가 성공을 가져온다는 것은 환상일 뿐이며 단지 학부모들의 위안거리에 불과하다"고 사정없이 깎아내린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미국에서도 '숙제의 효용성 논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최근 들어 학생들의 숙제분량이 많아지자 교육전문가들이 너도 나도 이의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듀크대학의 해리스 쿠퍼 교수는 숙제의 역효과를 강조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며,앨피 콘은 '숙제의 허상'이란 책에서 "초등학생들이 숙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학습 이득은 아무 것도 없다"고 단언할 정도다.
이러한 숙제를 둘러싼 시비는 좀체 어느 한편이 굽히지 않는 해묵은 사안이다. 전기시설이 미비했던 시절에는 아이들의 건강과 정신을 해칠 수 있다며 숙제를 대폭 줄였는데 이런 추세는 1900년대 전반기까지 계속됐다. 그러다가 소련이 스푸트니크 우주선을 발사하면서 미국이 우주경쟁에서 밀리자 창의성이 요구되는 분야 위주로 숙제가 늘었다고 한다. 숙제는 어느 시대에나 대두되는 뜨거운 감자여서인지,워싱턴포스트지는 "미국교육의 역사는 숙제의 찬·반논쟁으로 점철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한다.
아이들의 '숙제없는 방과 후 생활'이 과연 옳은지 그른지는 앞으로도 쉽게 결판날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교육학자들의 한 가지 공통적인 지적은 "잘못된 숙제는 오히려 학생들의 학습의욕을 꺾는다"는 사실이다. 교사들이 유념할 일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
논쟁의 발단은 빅토리아주의 한 신설 공립학교가 '숙제 금지'를 실행하면서부터 촉발됐다. 학교의 생각은 확고하다. "숙제가 성공을 가져온다는 것은 환상일 뿐이며 단지 학부모들의 위안거리에 불과하다"고 사정없이 깎아내린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미국에서도 '숙제의 효용성 논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최근 들어 학생들의 숙제분량이 많아지자 교육전문가들이 너도 나도 이의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듀크대학의 해리스 쿠퍼 교수는 숙제의 역효과를 강조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며,앨피 콘은 '숙제의 허상'이란 책에서 "초등학생들이 숙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학습 이득은 아무 것도 없다"고 단언할 정도다.
이러한 숙제를 둘러싼 시비는 좀체 어느 한편이 굽히지 않는 해묵은 사안이다. 전기시설이 미비했던 시절에는 아이들의 건강과 정신을 해칠 수 있다며 숙제를 대폭 줄였는데 이런 추세는 1900년대 전반기까지 계속됐다. 그러다가 소련이 스푸트니크 우주선을 발사하면서 미국이 우주경쟁에서 밀리자 창의성이 요구되는 분야 위주로 숙제가 늘었다고 한다. 숙제는 어느 시대에나 대두되는 뜨거운 감자여서인지,워싱턴포스트지는 "미국교육의 역사는 숙제의 찬·반논쟁으로 점철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한다.
아이들의 '숙제없는 방과 후 생활'이 과연 옳은지 그른지는 앞으로도 쉽게 결판날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교육학자들의 한 가지 공통적인 지적은 "잘못된 숙제는 오히려 학생들의 학습의욕을 꺾는다"는 사실이다. 교사들이 유념할 일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