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침묵으로 영그는 과일나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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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예 < 소설가 >
아침저녁으로는 피부에 닿는 바람결이 제법 쌀쌀하다.절기는 속일 수 없나보다.
하긴 추석이 겨우 일주일 남았으니.환절기마다 곱게 넘어가는 적이 없는 탓에 며칠 전부터 몸살기가 슬슬 돌았다.
투명한 가을 햇살에 맥이 빠지고 의욕과 식욕도 줄어 몸과 마음이 시들부들해져 버렸다.주부가 명절에 아프면 큰일이다.
전투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시들한 식욕을 부추길 만한 게 없나 떠올리다 아귀찜 생각이 났다.고추장 먹인 쌈닭처럼 매운 음식으로 몸살을 다스리고 싶었다.
우리 동네에는 아귀찜 식당이 세 군데 있다.
음식 맛이야 식당에 따라 다르겠지만 간판만은 차별 없이 평등하다.모두 '원조(元祖)'란 단어로 앞머리를 장식하고 있으니 말이다.
"'원조' 마산 아구찜".
한때 나는 그 수많은 원조식당 앞에서 고민한 적이 있었다.
"원조 감자탕" "원조 충무할매김밥" "원조 북창동 순두부" "원조 오장동 냉면"…. 원조란 한겨레의 맨 처음 조상 또는 어떤 일을 처음 시작한 사람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다.
하지만 원조의 사전적 의미가 무색하게 원조는 도처에 깔려 있다.
아니 오히려 원조들은 한곳에 몰려 있다.
관광지에라도 가보면 온통 원조들의 싸움터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얼마 전 서산에 가서 굴밥을 사먹으려 하니 한 곳에 모인 식당 예닐곱 군데가 모두 이마에 '원조'를 달고 있었다.
데모꾼들이 두건에 '필승'이니 '투쟁'이니 써 붙인 것처럼 식당들의 간판은 '원조'라 우기며 서로 악다구니치고 있었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고 아우성치듯 간판만 더 끔찍하게 커져버렸다.
그야말로 '이미지의 폭력'이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간판이 큰 걸로 치면 식당 따라잡을 곳이 없다.
위급한 병원 응급실 간판은 저리 가라다.
또 소문난 식당만큼 위압적인 분위기를 자랑하는 곳도 없다.
무너지지 않고 매달려 있는 무지막지한 간판들,들어서면 탁 트인 운동장만한 실내에서 저마다 떠드는 손님들의 목소리가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아수라장.
나는 언제부턴가 원조를 믿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많은 원조들은 역설적으로 더욱더 가짜라는 불신만을 내게 안겨 주었고,곰곰 생각하면 원조라고 반드시 맛이 좋으란 법이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다른 모든 것엔 '최신'이나 '첨단'이란 접두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먹는 것엔 '원조'를 고집하는 아이러니가 우습기도 했다.
꼭 그런 간판을 달아야 하는 걸까? 오히려 '원조'라 우기지 않으면서도 맛좋고 아늑한 집을 찾게 된다.
하지만 원조면 원조대로 아니면 아닌 대로 식당 문 앞에 각종 매스컴에 보도된 자료나 기사를 가문의 족보인 양 확대 복사하여 대문짝만하게 걸어놓았다.
그래야 손님을 끌 수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문제는 외화내빈(外華內貧),내실보다는 과잉선전에 더 열을 올리는 것 같아서 씁쓸하다.
대형 간판의 숲 속에서 오늘도 나는 길을 잃는다.
시선을 유혹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위협하는 음식점의 간판 앞에서 오소소,팔뚝에 돋은 소름을 쓸며 언젠가 영국 웨일스 지방의 숲 속 마을,5대째 가업을 이었다는 식당에서 먹었던 수프의 맛이 그리워진다.
그 마을의 소박하면서도 회화적인 상점들의 앙증맞은 간판들도 떠오른다.
오히려 문에 걸린 것은 간판이라 그러기엔 나무로 만든 작은 팻말들이었다.
때로는 침묵이 더 귀하다.
군자지언과이실,소인지언다이허 (君子之言寡而實,小人之言多而虛).군자는 말을 적게 하나 실하고 소인은 말이 많으나 허하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이렇게도 말했다.
"말은 나뭇잎과도 같다.나뭇잎이 무성할 때는 과실이 적기 때문이다."
결실의 계절 가을이 왔다.
말을 안 해 그렇지 곡식들도 과실나무들도 영그느라 제 살 떼어내듯 이파리 한 장씩 땅에 떨구며 조용한 아픔을 겪으리라.이 가을에는 우선 나도 말을 좀 줄여보리라.남을 현혹하는 말,나를 포장하는 말,과장되고 허황한 말들의 성찬을 피해 사색과 침묵으로 조용히 속으로 영글고 싶다.그래선지 환절기 몸살기가 그리 싫지 않다.
한 며칠 조용히 앓을 수 있겠다.
아침저녁으로는 피부에 닿는 바람결이 제법 쌀쌀하다.절기는 속일 수 없나보다.
하긴 추석이 겨우 일주일 남았으니.환절기마다 곱게 넘어가는 적이 없는 탓에 며칠 전부터 몸살기가 슬슬 돌았다.
투명한 가을 햇살에 맥이 빠지고 의욕과 식욕도 줄어 몸과 마음이 시들부들해져 버렸다.주부가 명절에 아프면 큰일이다.
전투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시들한 식욕을 부추길 만한 게 없나 떠올리다 아귀찜 생각이 났다.고추장 먹인 쌈닭처럼 매운 음식으로 몸살을 다스리고 싶었다.
우리 동네에는 아귀찜 식당이 세 군데 있다.
음식 맛이야 식당에 따라 다르겠지만 간판만은 차별 없이 평등하다.모두 '원조(元祖)'란 단어로 앞머리를 장식하고 있으니 말이다.
"'원조' 마산 아구찜".
한때 나는 그 수많은 원조식당 앞에서 고민한 적이 있었다.
"원조 감자탕" "원조 충무할매김밥" "원조 북창동 순두부" "원조 오장동 냉면"…. 원조란 한겨레의 맨 처음 조상 또는 어떤 일을 처음 시작한 사람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다.
하지만 원조의 사전적 의미가 무색하게 원조는 도처에 깔려 있다.
아니 오히려 원조들은 한곳에 몰려 있다.
관광지에라도 가보면 온통 원조들의 싸움터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얼마 전 서산에 가서 굴밥을 사먹으려 하니 한 곳에 모인 식당 예닐곱 군데가 모두 이마에 '원조'를 달고 있었다.
데모꾼들이 두건에 '필승'이니 '투쟁'이니 써 붙인 것처럼 식당들의 간판은 '원조'라 우기며 서로 악다구니치고 있었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고 아우성치듯 간판만 더 끔찍하게 커져버렸다.
그야말로 '이미지의 폭력'이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간판이 큰 걸로 치면 식당 따라잡을 곳이 없다.
위급한 병원 응급실 간판은 저리 가라다.
또 소문난 식당만큼 위압적인 분위기를 자랑하는 곳도 없다.
무너지지 않고 매달려 있는 무지막지한 간판들,들어서면 탁 트인 운동장만한 실내에서 저마다 떠드는 손님들의 목소리가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아수라장.
나는 언제부턴가 원조를 믿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많은 원조들은 역설적으로 더욱더 가짜라는 불신만을 내게 안겨 주었고,곰곰 생각하면 원조라고 반드시 맛이 좋으란 법이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다른 모든 것엔 '최신'이나 '첨단'이란 접두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먹는 것엔 '원조'를 고집하는 아이러니가 우습기도 했다.
꼭 그런 간판을 달아야 하는 걸까? 오히려 '원조'라 우기지 않으면서도 맛좋고 아늑한 집을 찾게 된다.
하지만 원조면 원조대로 아니면 아닌 대로 식당 문 앞에 각종 매스컴에 보도된 자료나 기사를 가문의 족보인 양 확대 복사하여 대문짝만하게 걸어놓았다.
그래야 손님을 끌 수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문제는 외화내빈(外華內貧),내실보다는 과잉선전에 더 열을 올리는 것 같아서 씁쓸하다.
대형 간판의 숲 속에서 오늘도 나는 길을 잃는다.
시선을 유혹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위협하는 음식점의 간판 앞에서 오소소,팔뚝에 돋은 소름을 쓸며 언젠가 영국 웨일스 지방의 숲 속 마을,5대째 가업을 이었다는 식당에서 먹었던 수프의 맛이 그리워진다.
그 마을의 소박하면서도 회화적인 상점들의 앙증맞은 간판들도 떠오른다.
오히려 문에 걸린 것은 간판이라 그러기엔 나무로 만든 작은 팻말들이었다.
때로는 침묵이 더 귀하다.
군자지언과이실,소인지언다이허 (君子之言寡而實,小人之言多而虛).군자는 말을 적게 하나 실하고 소인은 말이 많으나 허하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이렇게도 말했다.
"말은 나뭇잎과도 같다.나뭇잎이 무성할 때는 과실이 적기 때문이다."
결실의 계절 가을이 왔다.
말을 안 해 그렇지 곡식들도 과실나무들도 영그느라 제 살 떼어내듯 이파리 한 장씩 땅에 떨구며 조용한 아픔을 겪으리라.이 가을에는 우선 나도 말을 좀 줄여보리라.남을 현혹하는 말,나를 포장하는 말,과장되고 허황한 말들의 성찬을 피해 사색과 침묵으로 조용히 속으로 영글고 싶다.그래선지 환절기 몸살기가 그리 싫지 않다.
한 며칠 조용히 앓을 수 있겠다.